DJ와 홍어 점심, 하의도 1500명 모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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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가 24일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를 방문했다. 김 전 대통령 내외가 모교인 하의초등학교에서 주민들이 장만한 음식으로 오찬을 들고 있다. [뉴시스]

24일 오전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가 탄 쾌속선이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접근하자 김 전 대통령은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박지원 의원이 “흥분되십니까”라고 묻자 김 전 대통령은 함박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14년 만에 고향을 찾은 86세의 전직 대통령은 설레는 기색이 역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분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린 선착장에는 부슬비가 내리는데도 300여 명의 주민이 나왔다. 할아버지가 김 전 대통령과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장혜리(13)양이 꽃목걸이를 안겼다. 인구가 20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마을 농악대가 꽹과리를 울리고, 주민들은 “얼굴 드디어 봤네” “하나도 안 늙으셨구먼” 하면서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 선영을 참배하고 ‘하의 3도 농민운동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했다. 그는 주민 500여 명이 모인 이곳에서 “늦게 찾아뵈어 죄송하다”며 “기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이날을 위해 일주일 전부터 농악대에서 소고를 연습했다는 주민 김봉심(65)씨는 “평소 못자리 보고 밭맬 시간인데 오늘은 섬 전체가 잔칫날”이라며 “대통령일 때 왔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것 아니여”라고 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천덕례(79)씨도 “14년 전에 대통령이 왔을 때도 한복을 입었었다”며 “이런 좁은 면에서 저런 훌륭한 분이 나셨으니 그럴만하지”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이 가장 활짝 웃은 때는 모교인 하의초등학교에서였다. 전교생이 40명인 이곳 아이들이 악수와 사인을 청하자 “내가 선배여, 선배” “내가 1회여”라고 말했다. 6학년 이민흠(13)군은 “노벨상을 타신 대통령이 선배니 자랑스럽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강당에서 아이·주민들 200여 명과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이날 하의도 부녀회 소속 주부들이 직접 준비한 점심은 1500명 분이었고 농민운동기념관 앞 등 동네 곳곳에서 잔칫상이 펼쳐졌다. 자원봉사차 음식 서빙에 나선 안명자(57)씨는 “대통령께서 좋아하신다고 해서 홍어 삼합과 미역국을 준비했다”며 “3일 동안 오후 11시까지 준비해야 했지만 그래도 기쁘다”고 했다.

◆확인된 ‘김심(金心)’=김 전 대통령은 숨가쁜 일정 속에서도 수시로 박지원 의원에게 재·보궐선거 상황과 대북 관계 등에 대해 보고를 들었다. 박 의원은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힘을 모아 승리하기 바란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임을 분명히 했다. 전날 한명숙 전 총리가 김 전 대통령에게 들었다는 ‘민주당 필승론’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했던 것과 달랐다. 박 의원은 앞서 “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호남 민심을 환기시켜 인천 부평을과 전주에서 호남 출신 ‘집토끼(기존 지지층)’를 단속해야 하는 민주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이날 하의도에서 두 번이나 방명록에 쓴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을 하늘처럼 모셔라)’이라는 글귀도 선거를 앞둔 민주당에 보내는 메시지일 거라는 해석도 나왔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주민들 앞에서 “앞으로도 생명이 유지되는 한 세계 각국을 다니며 우리나라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다음 달 중국에도 다녀오고, 불굴의 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하의도=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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