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추적] 집단자살 모집 창구 된 포털 검색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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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최근 잇따른 동반자살 사망자들은 인터넷을 매개로 모였다. 종전에는 자살 사이트를 통해 거의 공개적으로 모였지만 정부가 지속적으로 자살 사이트를 폐쇄하면서 은밀하게 정보를 교환하는 점 조직 형태로 바뀌고 있다. 네이버의 ‘지식in’ 등 포털 검색사이트의 검색 서비스와 인터넷 카페가 그것이다. 자살 전문가들은 포털들이 자살자 모집을 미리 적발해 관련 글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포털 측은 사전검열 금지나 표현의 자유 원칙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19일 부산에서 자살한 A씨(21)는 ‘지식in’에 ‘자+살하실 분’이라는 글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죽은 지 닷새가 지난 24일까지 삭제되지 않은 상태였다. A씨는 지식in에서 쪽지를 주고받으며 B씨(26)를 알게 돼 두 사람은 함께 자살했다.

글 올린 사람의 아이디만 클릭하면 누구나 글쓴이에게 쪽지를 보낼 수 있고 댓글에 연락처를 남길 수 있다. 자살과 관련한 제목으로 글을 올려놓은 사람에게 쪽지를 보내고, 이런 식으로 계속 클릭을 하다 보면 숨어있는 카페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김희주 국장은 “올 들어 이달 15일까지 우리가 적발해 포털에 삭제를 요청한 자살 관련 유해 콘텐트 267건 중 171건이 네이버 지식in의 게시물”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싸이월드가 31건, 다음이 5건 등이었다.

네이버의 카페도 중요한 매개체가 됐다. 강원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강원도와 부산에서 발생한 5건의 동반자살이 모두 네이버 카페 ‘sucide04’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3일 강원도 양구군 46번 국도에서 자살을 기도한 윤모(23·여·서울)씨 등은 이 카페 회원이거나 탈퇴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정선 민박집에서 자살한 4명 중 이모(26·인천)씨도 이 카페의 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카페에서 수시로 쪽지, 인터넷 초청 e-메일 등을 주고받으며 자살 방법을 모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3월 28일 개설된 sucide04 카페는 20일 폐쇄됐다. 당시 회원은 19명이었다. 경찰은 인터넷 카페의 운영자 정모(21)씨를 자살방조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자살예방협회 김 국장은 “정보 교환이 은밀해져 과거보다 적발이 더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포털사이트가 1차 모니터링만 해도 크게 문제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자살과 관련해서는 지식인의 글을 삭제하지 않는다. 카페도 폐쇄하지 않는다. 네이버는 일정 기준을 미리 입력해 놓으면 이용자들이 올린 게시물 중 과도한 노출, 잔혹물 등 유해물을 자동으로 걸러낸다. 그러나 자살 관련 게시물은 유해물로 분류돼 있지 않다.

NHN 홍보팀 곽대현 과장은 “이용자끼리 비공개로 알음알음 주고받는 정보를 걸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곽 과장은 “가령 포털이 ‘죽고 싶다’는 게시물을 임의로 삭제하면 표현의 자유 문제나 사전 검열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며 “자살은 명백한 불법물이 아닌 데다 유해성 판단이 모호해 우리가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없고 정부가 관련 업체·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모아 기준을 정해 주면 따르겠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은=보건복지가족부는 22일 방송통신위원회와 네이버 등 주요 포털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우선 문제점을 공유하고 28일 다시 해결책을 찾기로 했다. 그러나 사실상 뾰족한 수가 없어 고민이다. 포털 회원에 가입할 때 약관에 ‘자살 관련 내용을 게시하면 삭제할 수 있다’는 문구를 집어넣을 것을 검토하고 있다.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민영신 사무관은 “금칙어 설정이나 모니터 방법 등을 놓고 정부 측과 포털 측의 입장 차가 크다”고 말했다.

안혜리·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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