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해낸다]6.사교육비 없는 세상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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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월급은 줄고 물가는 오른 마당에 30여만원씩 들어가는 아이들 학원비조차 큰 부담이 되네요. 그렇다고 학원을 중단하자니 불안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아내가 파출부를 하겠다는데 그나마 자리도 없고…. " 중3.고3을 둔 중소기업 부장급 회사원 金모 (49) 씨는 "IMF시대가 되기 전까지는 비싼 과외는 못시켜도 학원비는 그럭저럭 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부담이 너무 크다" 며 "정말 사교육비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고 말했다.

현 정부도 국민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기 위해 95년부터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입시개혁' 이란 슬로건까지 내걸고 다양한 노력을 해왔지만 IMF체제는 보다 획기적인 교육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교육비 부담이 과거 어느 때보다 무거워진데다 우리 경제가 완전히 벌거벗은 채 세계무대에 나서게 된 만큼 국제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인재 육성이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가정의 53%가 자녀를 학원.과외에 보내고 있다.

학원.과외비는 국민총생산 (GNP) 의 2.24%인 9조6천여억원. 94년 (5조6천여억원) 보다 70%나 증가한 것이다.

사교육이 성행하는 원인은 우리 국민의 높은 교육열도 있지만 입시 위주의 교육이 주범. 더구나 우리 교육은 '국내용 인재' 를 양성하는데 주력했다.

학벌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모두가 좋은 학벌을 따는데 매달리다 보니 세칭 일류대와 인기학과에 들어갈 성적이 못되면 최소한 4년제 대학 간판이라도 따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IMF시대는 우리 문호를 완전 개방시켰다.

이제 우리는 안방에서 세계와 싸워야 한다.

열린 세상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세계용 인재' 가 필요하다.

인재양성에서도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가 온 것이다.

경쟁력이란 독창적인 문제해결 능력이다.

이를 위해선 총점주의 입시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화.특성화를 존중하는 입시풍토가 빨리 정착돼야 한다."

교육부 장오현 (張五鉉) 고등교육실장의 진단이다.

연세대 한준상 (韓駿相) 교육학과 교수는 "입시위주 교육에서는 공교육비와 사교육비가 중복투자되는데다 1회용 입시비용이 너무 비싸다" 며 "우리 학생들이 고교까지는 세계 학생에 뒤지지 않다가 대학에서부터 뒤처지는 것은 암기위주 교육만 받았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우리 교육이 선진국과 경쟁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선 다각적인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교육개혁위원회 문용린 (文龍麟.서울대 교수) 상임위원은 "우리 학교교육은 삶과 떨어져 있어 우리 학생들은 세상돌아가는 것을 모른 채 항아리 속에 담겨 있고 자연히 생활력이 약한 학생들이 양산돼 국제경쟁력도 떨어진다" 고 말했다.

많은 교육 수요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수능을 쉽게 출제, 수능이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고 대학들도 다양한 입학전형방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입시전문기관인 중앙교육진흥연구소가 지난해 12월 전국 학부모 3천7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2.3%가 "수능이 쉽게 출제되면 과외.학원교습을 시키지 않겠다" 고 응답했다.

국어.영어.수학 위주의 교육체제도 개선돼야 하며 학생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열린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

서울대 윤정일 (尹正一) 사범대 교수는 "평가성격이 다른 수능과 학생부 성적을 합쳐 동등평가하는 현행 전형방식은 개선돼야 한다" 고 말했다.

공교육의 경쟁력도 문제. 시장논리로 보면 공교육에 부족한 점이 많아 사교육 시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전풍자 (田豊子)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공동대표는 "학교교육만 받아도 학부모.학생이 만족할 수 있도록 학교교육이 좀더 내실있게 운영돼야 하며 방과후 수업이 좀더 활성화돼야 한다" 고 말했다.

제도적인 개혁 이외에 학부모들의 의식도 빨리 변해야 한다.

세칭 일류대 졸업생만이 기득권을 갖는 세상은 지났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학생의 다양한 특기를 살려주는 교육을 통해 여러 분야의 '박찬호' 를 육성해야 하는 것이다.

IMF는 "한국 국민의 높은 교육열을 보면 한국의 미래가 밝다" 고 밝혔다.

이 말이 실현되려면 인재육성의 요람인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앞으로도 성적으로 모든 학생을 한 줄로 세우고 무 자르듯 서열을 매기던 행태가 계속되면 다양한 재질을 가진 어린 싹들이 자랄 수 없고 우리의 유일한 자산인 인재가 허송세월을 보내게 되기 때문이다.

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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