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희곡 당선소감]'시청각실' 이은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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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아폴론은 해바라기를 키웠다.

아무리 쳐다봐도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아폴론. 슬픔에 못이겨 꽃이 되버린 여인. 초가을, 무기력하게 아스팔트를 활보하다가 그녀를 만났다.

그녀, 해바라기는 딱딱한 연립주택의 작은 화단에서 불쑥 불쑥 크고 있었다.

여기서 보게 되다니… 다섯살때였다.

개울가에서 처음 본 해바라기는 그 순간부터 가장 좋아하는 꽃이 되었다.

운명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해바라기를 만난 것은 운명이었던것 같다고 얼버무리게된다.

꽃을 꺾는다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 해바라기는 내 키의 두배나 컸고, 손으로 해를 가려야만 노란 꽃잎을 볼 수가 있었다.

감히 꺽을 수 없는 꽃. 하지만 언젠가는 꼭 만져보고 싶었다.

어느새 해바라기 꽃잎을 손으로 어루만질 수 있는 키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했나보다.

예쁜 글씨 쓰는 친구가 부러워 글씨 연습에 매달리던 열등감처럼, 설레이는 사랑고백을 표현하지 못해 편지로 대신하던 부끄러움으로, 절망의 스무살을 이길 수 없어 고독한 일기장을 메꾸던 것처럼 글쓰기를 시작했다.

문방구에 들러 노트와 펜을 충동구매하고 그것들을 다 써버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오색의 밤을 보내던 지난날… 들쑥날쑥 변덕이 심한 나에게 글쓰기는 가끔 삶이 특별할수도 있다는 용기를 슬쩍 보이곤 한다.

해바라기 꽃잎을 만질수 있던 것처럼. 부족한 작품에 시선을 모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지켜봐주신 윤대성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자유롭게 키워주신 부모님과 형제들의 격려가 없었다면 이런 기쁨도 없었으리라. 돈독한 정을 쌓고 있는 지인 (知人) 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 아폴론에게도…

이은주

<약 력>

▶1971년 서울 출생

▶97년 서울예전 극작과 졸업

▶現 극단 실험극장 기획홍보실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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