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민족개조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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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대구 출신이다.

지난주중 대구에 들렀던 걸음에 친지들 몇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화제는 자연히 지난 선거이야기로 옮아갔다.

한 분이 선거결과에 대해 불만을 표하며 말했다.

"호남에서 97%나 김대중 (金大中)에게 찍었다는데 공산당이여 뭐여. 우리도 다음엔 본때를 보여줘야 해. 99%를 찍어 정권을 되찾아와야 해" 라고 열을 올려 말했다.

내가 그에게 말해주었다.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선거가 지난 후에는 자기가 찍었던 사람이 누구였느냐에 관계없이 당선된 사람을 밀어야지요. 호남에서 97%를 밀어서 김대중대통령이 나왔으면 이제는 전국민의 97%가 그를 밀어 새 정치를 이루어 나가야지요. 이제는 '호남사람 김대중' 이 아니라 우리 대통령 김대중입니다. "

분열과 다툼은 우리 민족이 지닌 망국병 (亡國病) 이다.

어느 겨레보다 빼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직껏 수난과 한 (恨) 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원인도 실상은 그런 망국병적인 국민정신의 탓이기도 하다.

지금 경제사정이 워낙 궁하게 됐으니 모두들 경제, 경제하지만 경제를 일으키려면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

경제를 일으키는 일에 바탕이 될 국민정신을 바르게 하는 일이다.

1910년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 빼앗긴 지 10여년이 지나면서부터 반성이 일기 시작했다.

왜 우리가 일본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게 됐는지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러한 반성의 결론은 우리의 국민정신이 그릇됐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 반성의 결과로 쓰인 그 시대의 글들 중에 대표적인 글이 춘원 (春園) 이광수 (李光洙) 의 '민족개조론' 이란 글이다.

1922년에 쓰인 이 글에서 이광수는 조선의 장래를 위해 쓴다고 밝히고는 조선인의 고질적 병폐를 여덟가지로 들었다.

거짓말하기, 공리공론을 일삼기, 표리부동한 성격, 공 (公) 과 사 (私) 를 구별하지 못하는 습관, 전문성의 부족, 낭비하는 습관, 위생관념의 부족, 용기와 결단력의 부족 등을 거론했다.

이광수가 이런 글을 발표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육당 (六堂) 최남선 (崔南善) 이 '역사를 통해 본 조선인' 이란 글에서 조선인의 단점을 열가지로 지적했다.

물론 이광수나 최남선이 지적했던 내용들이 그대로 다 옳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단점들이 오늘에까지 이어져 민족의 번영과 사회의 발전을 정체시키는 요소들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번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로 나라 사정이 어려워지자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다.

이런 논의를 통해 걸러지는 결론이 크게 두가지인 것 같다.

첫째는 정치계의 정치지도력 부족이요, 둘째는 국민성 내지 국민정신이 그릇된 점이다.

이 국민정신의 문제는 70년전에 일어났었던 반성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국민정신이 바람직하게 잡혀지지 않고서는 아무리 탁월한 지도자가 등장하더라도 오늘의 난국을 헤쳐나가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때에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어른이 도산 (島山) 안창호 (安昌浩) 다.

그는 조국이 암담한 세월을 지내고 있던 시절을 살아가면서 한결같이 인격과 도덕의 힘을 주창했다.

그는 국가가 독립을 지탱하고 민족이 번영을 누릴 수 있는 힘의 바탕을 국민들의 인격의 힘에 두었고 도덕의 힘에 두었다.

그가 남긴 글중의 한 구절을 인용해 보자.

"개인의 인격이 없고는 고도민족을 완성할 수 없고 개인으로나 민족으로나 '힘' 있는 자가 되지 못한다.

민족이 가장 큰 힘을 발하는 길은 오직 한 길, 즉 민족 각 개인의 인격을 건전케 하는 길이다. "

열번 옳은 말이다.

98년 새해는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건전한 인격, 허세없는 삶, 거짓말 하지 않는 생활을 이루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자. 그래서 경제를 일으키고 통일도 앞당기자. 모든 것의 시작을 국민정신 일으키기.민족개조운동에서부터 시작하자. 국민정신의 개조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 나갈 수 없다.

김진홍 <목사,두레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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