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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알제리,하씨 메싸우드'(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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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하씨 메싸우드는 '메싸우드의 샘' 이란 뜻의 아랍어로서 알제리 동부, 알제리 최대의 유전이 위치한 도시 이름이다.

인구는 대략 1만5천명으로 석유가 발견되고부터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이 도시는, 전엔 사막을 횡단하는 유목민이 가끔 들러 물 마시는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1956년 5월, 알제리와 프랑스 합작회사 에스엔 - 레팔과 프랑스 석유회사 씨에프피에이가 시추한 하씨 메싸우드 인근 베리엔이라는 지역에서 석유가 발견되었다.

이때부터 석유개발의 전초기지로서 하씨 메싸우드의 신화는 시작된다.

탐사와 시추가 거듭되고 추정매장량은 가없이 늘어나기만 했다.

현재 하씨 메싸우드의 매장량은 대략 2백50억 배럴로 추산되며 하루 약 38만 배럴을 생산하고 있다.

1967년을 기점으로 일일생산량은 다소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지만 하씨는 여전히 알제리내 최대의 유전이다.

1992년 현재 우리 나라의 한 해 석유소비량이 1백50만 배럴이라는 통계치와 비교해 보면 하씨는 하루에 우리나라가 약 4개월간 쓸 수 있는 석유를 생산해 내는 셈이다.

최초의 유전 발견 이후 육상시추기가 이곳 하씨에 쇄도했다.

골드 러시를 연상케하듯 메이저를 비롯한 석유회사들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그들은 원래 조그만 오아시스에 불과하던 하씨에 여장을 풀고 그곳에서부터 방사형으로 사방에 퍼져 나가면서 탄성파 탐사를 시작했다.

수진기를 25미터마다 꽂고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면 지하의 심부 구조가 엑스레이에 노출된 인간의 늑골처럼 선명하게 드러나고, 기술자들은 탁자 위에 전지보다도 훨씬 큰 페이퍼 섹션을 펼쳐놓고 저류암과 근원암.트랩을 해석했다.

태고의 적막만이 가득하던 사막엔 예전에 없던 활기가 찾아 들었다.

배사구조를 따라 연이어 석유가 발견되고 피를 빨아먹는 벌레마냥 검은 시추기들은 모래 사막 위에 달라붙어 끊임없는 번식을 시작했다.

59년 11월에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 부지까지 잇는 육상 파이프라인이 건설되었다.

그로써 석유개발을 위한 인프라는 모두 갖춰진 셈이었다.

이후 신기루처럼 사막위에 순식간에 일어선 도시엔 몰려드는 알제리인과 현지에 파견된 석유회사의 지질학자.엔지니어.일용 노무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아파트와 플랫이라 불리는 단층주택 밀집지역 그리고 보급기지가 잇따라 만들어졌다.

이외 생활에 필요 불가결한 술집.이발소.식료품 가게 따위가 날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도 결국은 석유 때문에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하씨 시내를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게 되면 거기서부터는 온통 모래뿐이었다.

적갈색 모래 그리고 뜨거운 태양과 파란 하늘. 그 뿐이었다.

사방 지평선 끝까지 숨죽인 사막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엔 이름 모를 풀들이 드문드문 피어 있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나는, 현장보급 담당역으로 하씨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2킬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보급기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내가 있던 기지 주위도 온통 모래뿐이긴 마찬가지였다.

실상 모래 사막이 기지를 사방에서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었는데 고립무원한 기지와 사막 너머의 외부 세계를 연결해주는 통로는 하씨를 거쳐 서쪽에 있는 우글라라는 도시를 지나 남쪽의 랄르망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 단 하나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하릴없이 사막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트막한 사구가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는 지평선과 그 위로 너울대는 검은 연기를. 그것은 석유를 뽑아내기 위해 불가불 없애야 하는 가스를 태울 때 나는 연기였다.

주위에 산재해 있는 유전에선 끊임없이 가스를 태워대고 있었다.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에 달아오른 사막에 서 있으면 코끝으로 석유 냄새가 물큼 다가왔다.

튀니지에서 목요일마다 뜨는 십이인승 비행기를 타고 우글라에 내려 처음 사막을 밟았을 때도 그처럼 드럼통에 코를 처박은 것 같이 강렬한 기름 냄새가 났다.

속이 메스꺼웠다.

바싹 마른 열기가 바닥에 깔린 모래들로부터 치솟아올라 현기증이 일었다.

마중 나온 김만희 부장이 내 오른팔을 잡고는 어떤가, 기분이? 라고 말했다.

도치법으로 이루어진 그 문장의 속뜻을 헤아리지 못해 나는 그의 검은 색안경만 쳐다보고 있었다.

부장과 나는 곧 무장한 알제리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지프를 타고 보급기지로 출발했다.

무장한 경찰이 어깨에 걸머매고 있는 엠케이 자동소총 때문에 나는 지프 안에서 줄곧 불안했다.

차가 흔들림에 따라 아래 위로 까딱거리는 총구가 내 옆구리를 향해 있었던 것이다.

허나 그 총구에도 땀은 나지 않았는데, 사막이 워낙 건조한 탓이었다.

김부장은 앞좌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여기서는 담배 한 갑이 삼 불이나 하네. 그것도 다 사막 탓이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알제리 경찰들은 부장이 몇마디 하는 사이에도 움푹 들어간 눈자위에 그늘을 만들며 말없이 동상처럼 서 있었다.

나는 부장의 웃음소리가 그들의 침묵 앞에서 모래바람에 날려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총구는 계속 내 옆구리 쪽에서 달그락거리고 있었다.

한낮의 태양이 이글거리고 먼지 같은 모래들이 어느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내 발 끝까지 다가오면 피로와도 같은 권태가 어깨 위로 몰려들었다.

그럴 때면 나는 철조망이 쳐진 기지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켜고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사막으로부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예의 그 검은 연기 외엔 움직이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차를 타고 이삼 분만 가면 하씨 시내로 들어갈 수 있으나 거기도 별다를 바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럴 때 루피라도 찾아오면 좋으련만. 나는 모래 한 줌을 손에 들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한 알 한 알을 관찰했다.

수직으로 떨어져 내 구두코에 부딪히는 모래알들. 잠시 먼지가 일고 그것이 가라앉으면 나는 다시 모래 한 줌을 집어들었다.

아무려나 바람이라도 좀 불어주면 좋을 텐데. 하씨엔 한 달에 한 번씩 강한 돌풍이 분다.

그럴 때면 수신 안테나와 바깥에 널어놓은 세탁물, 바람에 날아갈 만한 것들을 모두 사무실 안에 들여 놓고는 문을 꼭 닫고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다본다.

창문까지 기어오르는 모래 먼지들을 보고 흩날리는 모래들이 휘잉거리는 바람과 함께 철제 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럴 땐 사무실이 아늑하고 포근한 게 꼭 커피 한 잔 생각이 났다.

하지만 그런 바람이 부는 것도 한 달에 한 번뿐이었다.

보통때 나는 지평선 위로 휘날리는 검은 연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이라곤 그것뿐이니까. 진공의 공간에 무중력으로 떠 있는 기분이었다.

정지해 있었다.

전혀 마찰을 느낄 수 없었다.

우글라를 지나, 용수 배급을 담당하는 알제리 업자를 만나기 위해 게라라로 향할 때도 나는 사막 중간에서 차를 세워 거기 있는 모래를 만져보았다.

수만, 수억 년의 세월 동안 풍화된 모래들은 모난 곳 없이 그저 매끄러울 따름이었다.

저항도 없고 의지도 없고 시간도 의식도 존재도 없었다.

무엇인가 있다면 그것은 석유뿐이었다.

매몰심도3천2백70미터의 공간. 거기에 석유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4억년전 실루리아기의 흑색 세일이 바다 밑에 쌓이고 두 번의 지각 변동을 거쳐 탄화수소는 캠브리아기 저류층에 집적되었다.

그 저류층의 층후는 2백70미터, 면적은 무려 1천3백 평방킬로미터이다.

시추탑을 세우고 드릴에 이수를 채워 넣어 30인치 공으로 1백88 미터를 뚫고 다시 20인치 공으로 6백1미터를 뚫는다.

계산을 통해 이러한 정교한 작업을 반복하여 목표층에 도달하면 드디어 기름이 용암 끓는 소리와 함께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다.

그러면 우리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서로 얼싸안고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두드려대곤 한다.

그때가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난 손 안에 깔깔한 감촉으로 남아 있던 모래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게라라로 향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내가 신기루를 처음 본 것은 바로 그때, 일을 마치고 게라라로부터 다시 하씨로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 뭐야, 드라이? 드라이라구?

김부장은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담배를 꺼내물었다.

- 어디까지 갔는데?

타겟까지 갔어?

내가 컨테이너에서 나와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부장은 이미 뿌옇게 밝아 오는 사하라 사막이 아득히 펼쳐져 있는 창문을 배경으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예, 좀 있으면 결과가 나올 겁니다.

현장에서 보고가 있으면 즉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는 본사와 통화중이었다.

윤대리, 현장에 연락 넣어봐. 꾸물거리지 말고. 전화를 끊고 그는 내게 불호령이었다.

그는 우글라 공항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여유를 이후로 다시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만만디로 유명한 그도 이곳의 상황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현장에선 이미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스턱은 어떻게 됐대?

그는 침착치 못한 어조로 묻다가 답답해선지 내게서 송수화기를 뺏어들었다.

최대리? 뭐, 해결됐다구?

거 정말 요상하네, 별짓을 다 해도 안 되더니만. 그래, 그럼 앞으로 몇 미터 남았는데?…… 그래? 십이삼 미터면, 오늘까지는 타겟에 가야 돼. 알어?

본사에서 자꾸 독촉이라구. 본사는 지금 스턱된 것도 몰라. 아무튼 가라구. 오늘까지 꼭……그는 송수화기에 대고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다.

- 7백만불이야!

7백만불. 어떻게든 해 봐. 오일 쇼라도 있어야 될꺼 아니야. 이래선 어떻게 본사에 보고할 수 있겠어?

알투까지 가봐. 왜 안돼?

뭐라구?

아니, 인부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손놓고 있는 게 말이 돼?

밤 열두시다.

알제리인들이 저녁을 먹는 시간이다.

지금쯤 하씨의 레스토랑은 베르베르인과 아랍인, 양놈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우리도 열한 시쯤 나가 저녁을 먹고 오는 것이 보통이지만 오늘은 예외다.

하지만 현장인부에게도 예외가 통할 리 만무하다.

아마도 현장인부들은 지금쯤 안전모와 이수로 뒤범벅이된 작업복을 벗고 아랍어로 떠들며 샤워실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예외를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은 현장의 최대리도 모를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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