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들 새해경영 어떻게 꾸려가나…필사의 구조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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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해는 해방이후 가장 어려운 한해였다.

올해는 그러나 작년보다 더 위기의 한 해가 될 것이다” 재계가 보는 새해 기상도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속에 대외신인도 추락.성장율 감퇴.고금리 지속.환율 불안등 악재가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금융구조개편의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기업 자금난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기업 연쇄부도 사태도 언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 기약을 못하는 실정이다.

재정 초긴축과 대량실업에 따른 소비위축으로 내수시장은 더욱 얼어붙을 전망이고 수입선다변화 조기해제등으로 시장개방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여 국내 업계는 내우외환 (內憂外患)에 시달릴 수 밖에 없게 됐다.

재계는 특히 'IMF 프로그램' 에 따른 연결재무제표 작성.상호지보 축소등 기업 투명성 확보에 관한 각종 개혁조치가 앞당겨지면 향후 재계 순위.판도를 뒤바꾸고 기업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칠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삼성.LG등 주요그룹들은 이에따라 올 한해를 '위기극복을 위한 비상경영의 해' 로 선포하고 구조조정.수출 증대.현금유동성 확보.재무구조 개선.경영투명성 제고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 올 재계의 화두는 구조조정 = 재계는 '기업 생존' 을 지상과제로 삼아,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합칠 것은 합친다는 사업 구조조정에의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와관련 그룹간 덩치 큰 계열사나 사업을 주고 받는 빅 딜 (BIG DEAL)가능성도 주목되고 있다.

이건희 (李健熙) 삼성그룹회장은 "올해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사업구조 혁신의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며 "대담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나가자" 고 주문했다.

현대그룹은 정리대상 사업을 1월중 추릴 예정이며 구본무 (具本茂) LG그룹 회장은 "구조조정이 안되면 내가 직접 하겠다" 고 사장들을 독려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구조조정에 필요한 금융.세제등 제도 정비를 정부에 촉구하는등 측면 지원한다는 방침이며, 최근 이를위한 대통령 긴급명령 발동까지 정부에 건의했다.

◇ 투명경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 = 재계는 이제 차입경영은 불가능하며, 결합재무제표 작성.상호지보 해소등이 없이는 대외신뢰 회복이 어렵다고 보고 기업마다 관련 대책을 세우고 있다.

특히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하면 계열사간 중복 계상된 매출등 거품이 빠지면서 재계 순위도 상당한 변동이 있을 전망이다.

현대그룹은 투명성 확보에 관한 정부시책에의 협조방침을 천명하면서 사외이사제 확대, 협력업체와의 깨끗한 거래질서 확립을 위한 공정거래윤리준칙 마련등에도 나섰다.

선진국처럼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해 기조.비서실의 법적지위를 확보하자는 방안이 전경련을 중심으로 강구되고 있는 가운데 삼성그룹이 비서실 인원을 1백50명에서 1백명으로 줄이는등 계열사 자율경영 확대 움직임도 가속화되고 있다.

◇ 어떻게든 살아남자 = 재계는 부실금융기관 정리 여파로 기업 자금난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되며, 부도위기에 몰렸을 경우 정부나 금융기관이 막아줄 방법도 없다는데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각 그룹은 이와관련 현금흐름을 중시하고 현금유동성을 확보하는데 당분간 역량을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이에따라 각종 경비를 최대한 줄이고 불요불급한 투자는 연기.취소하는 움직임이 새해엔 더 본격화될 전망이다.

현대그룹은 인도네시아 자동차사업 철수를 고려중이다.

LG그룹 이문호 (李文浩) 회장실 사장은 "이미 확정된 사업이라도 대규모 프로젝트는 재검토하고 있다" 고 말했다.

전경련은 신년초 은행장.기업인간 긴급모임을 갖고 대책을 논의키로 했으며, 대외신인도 회복을 위해 민간주도의 국가이미지 제고사업도 벌여나가기로 했다.

◇ 채산성 확보도 시급한 과제 = 환율폭등으로 수입원자재값이 치솟고 고금리추세로 고비용구조가 심화되는 가운데 내수침체로 제품값은 올리지 못하면서 채산성이 크게 나빠진 것도 기업들의 속병을 깊게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수입선다변화 조기해제로 일제 경차가 이달부터 국내에 상륙하는등 시장개방이 가속화되게돼 안방 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에따라 많은 업종에서 감산 (減産)에 나섰거나 나설 계획이며, 근본적으로는 '수출만이 살길' 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그룹내 수출상 (賞) 을 신설했고 삼성.LG.대우등도 수출목표를 늘려잡는등 수출총력체제 구축에 나서고 있다.

민병관·이원호·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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