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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고문 파문’ 보-혁 갈등으로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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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 정부가 미 중앙정보국(CIA)의 가혹한 테러리스트 신문 기법을 공개한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이 같은 신문 기법을 법적으로 허용한 관계자들에 대한 사법 처리와 의회 차원의 전면적인 조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자 부시 전 정부와 정보 분야 관계자 등은 “오바마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작게는 전 정권과 현 정권 지지 세력, 크게는 보수와 진보 진영 간 갈등 양상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지침 작성자와 수행자 구분”=오바마는 16일 부시 행정부 시절의 법무부가 CIA에 내려보낸 ‘테러용의자 신문 지침’ 메모를 공개했다. 그러면서 “물 붓기 등 가혹한 신문 기법은 분명히 잘못됐지만, 지침에 따라 신문한 CIA 요원들을 기소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이때 지침을 만든 사람들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바마는 21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가혹한 신문 기법을 허용한) 결정을 내린 사람들에겐 다양한 법률 기준에 따라 법무장관의 추가 결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침 수행자와는 달리 지침을 만든 전 법무무 관계자들에 대해선 사법 처리 가능성을 처음 시사한 것이다. 현재 미 언론에서 거론되는 지침 작성 관련자는 제이 바이비 전 법률위원회 위원장, 스티븐 브래드버리 변호사, 한국계인 존 유 UC버클리대 교수 등 세 명이다.

당초 오바마의 입장은 지침 작성자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주는 쪽으로 비춰졌다.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이 방송에 출연해 “대통령은 이 지침을 고안한 사람들을 쫓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악관은 21일 “대통령의 오늘 발언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여 달라”며 입장을 정리했다. 오바마는 또 이날 의회 차원의 전면 조사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는 “이 문제는 매우 복잡한 이슈”라며 “의회가 초당적인 입장에서 조사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2001년 9·11테러를 독립적인 위치에서 조사했던 ‘9·11 진실위원회’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상원 법사위원장인 민주당의 패트릭 레이 상원의원은 즉각 환영했다. 민주당 소속의 하원 법사위원장 존 코니어스 하원의원은 진실위원회 활동과 분리된 별도의 청문회 개최 의사를 밝혔다.

오바마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은 메모 공개 후 인권단체 등 자신의 지지층에서 “철저한 조사와 함께 관련자 처벌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대두됐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신문 성과도 공개하라”=부시 행정부에서 안보 분야를 진두진휘했던 딕 체니 전 부통령은 20일 방송에 출연해 “오바마가 신문 지침만 공개하고, 이런 노력에 따라 이룬 성과는 공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내가 읽었던 보고서엔 신문 과정을 통해 우리가 획득한 것과 국가를 위한 결과물들이 담겨 있었다”며 보고서의 전면 공개를 촉구했다.

존 유 교수는 21일 캘리포니아주 채프먼대에서의 강연에서 “알카에다와 관련 조직에 관한 정보의 50%는 수사기관들의 신문을 통해 얻었고, 그 때문에 우리는 지난 7년여 동안 테러를 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은 가혹한 신문 기법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하면서도 우려감을 표시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무엇이 오바마 정부의 정확한 입장인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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