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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부도시대…쓸데는 많은데 돈줄말라 살림살이 침몰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기업.금융기관의 부실화가 이제는 개인으로 번지고 있다.

불황에 따른 가계파탄은 벌써부터 예고된 일이다.

다니던 직장이 없어지거나 갑자기 봉급이 깎인 반면 물가와 금리는 폭등하고 있다.

소득은 줄고 지출이 늘어난 것이다.

이 상태가 오래되면 결국 개인도 기업처럼 부도를 피할 수 없다.

특히 이번에는 사정이 더 혹독하다.

개인별로 사정은 다르지만 누구나 연말이 되면 돈 쓸 곳이 많아진다.

평소 같으면 연말 보너스로 '자금 보릿고개' 를 넘길 수 있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보너스가 줄거나 나오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 월급만 제대로 받아도 다행이다.

아예 직장을 잃는 사람도 많다.

여기에 환율이 올라 물가도 불안해지고 있다.

생계비 부담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또 IMF의 요청에 따라 긴축정책이 시작되자 금리는 연일 고공행진이다.

은행별로 2~3% 정도 이자가 올라 은행빚을 쓰고 있는 사람은 이자부담이 늘어났다. 물론 예금금리가 올라 이자수입이 늘어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극소수 자산가에 한정된 얘기다.

대다수의 봉급생활자들은 대출이자가 높아져 생계부담만 늘어나게 됐다.

나름대로 씀씀이를 줄인다 해도 기본 생활비가 워낙 비싸져 저축으로 돌릴 돈은 자꾸 줄어들게 된다.

이미 개인부도의 조짐은 은행 창구에서 슬슬 나타나고 있다.

연말결산을 앞두고 각 은행들은 개인대출에 대해 만기상환을 독려하고 나섰으나 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보너스를 못받아 갚을 돈이 없으니 만기를 연장해달라" 는 요청만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은행들은 개인부도가 내년 3분기부터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최근 늘어난 퇴직자들이 퇴직금을 까먹는 시점이 대략 그때쯤 된다는 계산이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 계 (契) 등 사보험 (私保險)에 들고 있는 사람이 많고 저축률도 높아 일정기간 소득이 끊겨도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비교적 긴 편이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은 종전엔 4인 가족이 가장의 퇴직금으로 약 1년은 버틸 수 있었으나 요즘은 6개월 넘기기가 어려워졌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개인대출에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일단 연말을 앞두고 개인 신용대출을 거의 끊었다.

다만 일정 한도까지 자동대출이 이뤄지는 마이너스통장 대출만 계속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한도가 은행별로 65~80%까지 차 올라와 추가대출이 일어날 여지가 많지 않다.

결산이후에도 국민.평화.주택 등 소매금융에 특화돼 있는 곳을 빼고는 개인대출을 다시 늘릴 계획이 없다.

조흥은행 여신통할부 김정수 차장은 "실업률 증가로 내년부터 개인 여신의 부실화가 늘 것에 대비해 심사를 엄격히 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런 현실이 개인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기업처럼 차입금에 의존해 투자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은행에서 싼 이자의 대출을 끌어내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지금까지는 이것이 재테크로 통해왔다.

그러나 고금리에 자산 디플레가 겹칠 경우 이는 망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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