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도 IBM도 안 무섭다 … 연 매출 50조원 ‘IT공룡’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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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세계 정보기술(IT) 시장에 오라클발 지각 변동이 일 조짐이다. 미국 오라클과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이하 선)의 합병 결정은 세계 정상급 소프트웨어(SW)와 하드웨어(HW) 경쟁력을 갖춘 업체들의 결합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파장이 적잖다. 오라클은 세계 2위의 SW, 선은 4위의 컴퓨터 서버 업체다. 지구촌 30여만 크고 작은 업체·기관을 상대로 연 50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공룡 IT 업체가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오라클과 선의 합병을 놓고 ‘경이로운 입(Oral+Miracle)’이 ‘태양(Sun)’을 삼켰다느니 하는 입방아가 나올 정도다. 세계 IT 업계의 판도 변화를 가져올 초대형 인수합병(M&A)이라는 것이다.

오라클은 우선 SW 위주의 사업영역을 컴퓨터 서버로까지 넓히면서 SW와 HW 간 시너지를 한껏 활용할 속셈이다. 이를 통해 SW 시장에선 마이크로소프트(MS)와, 서버 시장에선 IBM·HP·델 같은 미 국적의 선두업체들과 대등한 경쟁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래리 앨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CEO)는 “선을 인수해 SW부터 HW에 이르기까지 IT 사업 전 영역의 원스톱 토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좋아했다. 조너선 슈워츠 선 CEO도 “오라클과의 통합으로 컴퓨터 시스템과 SW 간 장벽을 허물고 최고의 시너지를 내는 ‘IT 통합 발전소’가 탄생하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오라클은 선과 시너지 효과를 내, 지난해 총 370억 달러(오라클 240억+선 130억)였던 매출을 2012년에 연 500억 달러까지 키운다는 목표다.

오라클은 이와 함께 선의 서버용 SW를 내세워 차세대 디지털 IT 기기 시장의 선두주자로 올라설 수 있다고 기대한다. 전 세계 10억 대의 컴퓨터 서버에 쓰이는 SW인 ‘자바(JAVA)’가 그 지각 변동의 진원지다. 자바는 선이 서버를 만드는 과정에서 개발한 네트워크 컴퓨터용 SW 제작 프로그램 언어다. 당초 중대형 컴퓨터에 주로 들어가던 자바는 점차 인터넷 관련 통신·가전 제품에까지 폭넓게 침투하면서 디지털 IT 기기 시장에서 ‘황제 SW’로 떠올랐다. 오라클은 이런 자바를 거머쥠으로써 서버 1위 IBM과 SW 황제 MS를 동시에 견제할 수 있다고 본다. IBM이 최근 선의 인수를 적극 검토한 것이나, MS가 오라클-선의 통합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연유도 자바의 위력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티브 발머 MS CEO는 합병 소식을 듣고 “무척 놀랐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SW 시장에도 파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라클이 우위인 데이터베이스 관리 SW(DBMS)는 물론, 차세대 네트워크 서버(가상화 솔루션)나 가전·통신 단말기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DB와 같은 완제품뿐만 아니라 IT 기기·시스템 개발 관련 SW에까지 오라클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한국IBM 관계자는 “오라클이 자바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SW에다 서버 시장까지 손에 쥐게 되면, 국내에서도 SW 완제품에서부터 개발툴과 미들웨어·서버 시장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힘을 발휘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오라클은 선을 74억 달러(약 10조원, 주당 9.5달러)에 인수, 통합한다고 20일(현지시간) 발표한 바 있다. 인수가격은 선의 전 주식 시가총액에 부채까지 합쳐 42%의 프리미엄을 붙인 수준이다. 얼마 전 IBM이 선에 제시한 70억 달러(주당 9.4달러)보다 4억 달러 많은 인수가다. 오라클코리아의 이종영 상무는 “주주 의사를 묻고, 합병 반대 주주의 주식을 처리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오라클은 2005년부터 345억 달러를 들여 52개 업체를 사들이는 등 공격적 M&A 전략을 구사해 몸집을 불려왔다.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로 위축되기 시작한 지난해에도 BEA시스템스를 85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원호·김선하 기자,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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