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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출판 화제]'마이웨이'…미망인이 밝힌 '킴 필비'의 인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20세기 첩보사상 가장 뛰어난 스파이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영국의 이중간첩 킴 필비의 소련생활은 지금까지 알려진 만큼 화려하지 못했다.

더 타임즈의 종군기자출신인 필비는 영국 대외정보국 MI6의 대소련 방첩책임자, 영미간 정보연락관등을 지내면서 각종 고급정보를 소련으로 유출한 거물 간첩. 그러나 그는 망명 직후 소련국가보안위원회 (KGB) 의 냉대로 자살기도까지 했었다.

최근 모스크바에서 발간된 미망인 루피나 필비 (65) 의 회고록 '마이 웨이 : 스파이 킴 필비의 일생' 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루피나는 필비가 영국에 돌아가고 싶어했고 영국 물건에 대해 애착을 보였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은 변한 적이 없으며, 자신이 영국을 배신하고 소련을 위해 일한 데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루피나는 그러나 필비가 망명후 KGB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데다 소련의 현실에 좌절감을 느낀 나머지 한때 팔목의 동맥을 잘라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자신이 언젠가 필비의 팔목에 큰 흉터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유를 묻자, 필비는 이를 감추면서 "공산주의자는 인내심이 강해야 하며 약점을 보여선 안된다" 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필비는 탁월한 스파이이기 전에 지성과 감성을 함께 갖춘 '보통사람' 이라는게 루피나의 평가다.

그가 소련에 와서 받은 가장 큰 충격은 자신이 KGB 정식요원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전향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KGB의 규율에 따라 필비는 14년동안이나 모스크바의 KGB 본부에 들어가지 못했다.

필비의 4번째 부인인 루피나는 지난 70년 필비와 결혼, 88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함께 살았다.

소련 몰락으로 정부로부터 지원이 끊어져 생활고를 겪던 그녀는 지난 94년 7월 런던 소더비경매장에다 필비의 유품을 일괄 경매에 부쳐 15만파운드라는 거금을 손에 쥐기도 했다.

런던 = 정우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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