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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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갈등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헌재가 위헌 결정으로 무효화하자 사법부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헌재가 95년11월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법률을 대법원이 5개월 뒤 (96년4월) 효력이 살아 있다며 헌재의 결정과 배치되는 판결을 내렸을 때부터 이같은 갈등은 예견됐던 일이다.

같은 사건을 놓고 당시에는 헌재가 반발했으나 이번에는 입장이 바뀐 것이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헌재의 위헌 심판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고 본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이미 헌재가 위헌결정을 했는데도 대법원이 무시하고 뒤집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법률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재의 판단이 간단히 뒤집어진다면 근본적으로 헌법재판제도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재판 결과가 헌법소원 대상이 될 경우 결과적으로 4심제가 된다는 법원측의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또 법률의 해석 적용권은 사법부에 있고 헌재의 이번 결정이 국회의 입법권과 사법부의 재판권에 영향을 미친다는 비난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 대해 헌재 스스로 모든 재판 결과가 헌법소원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위헌 법령을 적용해 재판했을 경우만 예외적으로' 헌법소원 대상이 된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으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입지가 불리한 대법원은 헌재의 이같은 결정에도 불구하고 판례를 변경하지 않고 같은 사안의 판결로 입장을 밝히겠다며 강하게 반발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는 기관끼리 권한다툼을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 유감이다.

특히 IMF시대를 맞아 온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시점에서 법이론에 기초한 대응이 아니라 감정적 대립을 보이는 것은 어느 기관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관계법이 허술해 일어난 갈등인 만큼 법개정 등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개선책을 찾되 두 기관의 대립.반목은 더 이상 표출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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