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부터 소통이 안 되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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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휴일인 19일 정정길 대통령실장 주재로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지금까지 부족했던 정부 내부의 횡적(橫的)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다짐이 나왔다. 정부 부처 간, 청와대와 부처 간, 청와대 수석실 간 소통 부족을 반성하며 개선을 다짐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가 국정 컨트롤 타워로서의 임무를 회복하기 위해선 부처와의 관계를 따지기에 앞서 먼저 청와대 내부 소통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는 자성론도 나왔다. 그동안 얼마나 막혀 있었기에 이런 반성의 목소리가 폭주하는 것일까.

북한이 ‘21일에 만나자’는 통지문을 보낸 다음 날인 17일 오전 벌어진 광경은 청와대 내부의 정보 단절을 보여주는 가장 실감나는 사례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이 본지를 비롯한 언론사들을 상대로 “북한의 접촉 제의는 개성공단에 억류된 인사의 신병과 관련된 문제니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느라 쩔쩔매고 있을 때 청와대 공보라인은 북한의 제의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몰랐다. 그동안 외교안보수석실 일각에선 “대변인실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발표 날짜를 기정사실화해 발표하는 바람에 안 맞아도 될 여론의 뭇매를 우리가 맞았다”는 불만이 있었다. 이런 앙금들이 결정적인 순간 외교안보수석실과 대변인실 간 불통(不通)을 낳았다는 게 청와대 내부의 중론이다.

문제는 이런 사고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기기에는 수석실 간 정보 단절이 너무 구조화돼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0일 “다른 수석실에선 전화 연락조차 안 되는 비서관이 많다”고 말했다. 핵심 보직을 맡고 있는 모 비서관의 경우 다른 수석실은커녕, 대통령실장실에서 긴급하게 호출해도 1박2일이 지나서야 연락이 되는 대표적인 ‘불통 비서관’으로 통한다.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상황까지 빚어지기가 부지기수다.

이 같은 단절 현상의 한복판엔 ‘협조’나 ‘시너지 효과’보다 지나치게 ‘보안’을 강조하는 현 청와대 내부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민정수석실의 유난스러운 감찰 활동이 수석실 간 반목과 갈등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잦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월 회의석상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했다는 발언의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시작된 민정수석실의 ‘유출자 찾기’는 2주일이 넘게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진원지로 의심을 받은 청와대 내 두 실세부서는 서로 “상대방이 흘렸다”며 지금까지도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툭하면 전화통화 추적에 시달려야 하는 직원들에게는 수석실 간 협조나 정보공유를 염두에 둘 여유가 없다. 수석비서관 회의에 올라가는 자료에 각 수석실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주력 사업들은 대부분 빠지고, 각 정부 부처에서 올리는 일상 정보만 담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 수석들과 청와대 밖 유력 인사들 간의 알력이 심각해진 것도 최근에 뚜렷해진 경향이라고 청와대 실무진들은 입을 모은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 ‘실세 차관’ ‘실세 위원장’이란 이름으로 정부 부처와 청와대 직속 위원회에 자리를 꿰차면서, 비슷한 일을 하는 청와대 수석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의 사이가 껄끄러운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고, 대학의 입학사정관제도를 놓고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과 정진곤 교육과학수석의 의견이 달라 조율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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