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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현재 공존하는 서울은 흥미로운 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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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 아래 낡아가는 건축물들. 쿠바에서 태어나 미국에 자리 잡은 건축가 구스타보 아라오즈(61·사진)의 마음속에 새겨진 고향 아바나의 이미지다. 열두 살 때 쿠바 혁명이 터지면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뒤 지금까지 두고두고 그리워하는 풍경이다. 건축물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쿠바에 대한 기억은 그를 건축가를 거쳐 유적 보존 활동가의 길을 걷도록 이끌었다.

세계 유적 보존 전문가들의 비정부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ICOMOS)의 회장을 지난해 맡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유네스코(유엔 문화과학교육기구) 자문기구인 이 협의회는 1965년 창립돼 현재 130여 개국 9000여 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이코모스 한국위원회(위원장 이상해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61)의 설립 10주년을 맞아 17일 서울 고궁국립박물관에서 열렸던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만났다.

-세계 경제위기가 유적 보존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나.

“경제가 어렵다고 유적 보존을 소홀히 하는 것은 현재의 어려움을 빌미로 과거를 부정하고 미래를 등한시하는 것이라고 본다.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는지에 따라 현재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까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유적을 보존한다는 것은 과거를 소중히 여긴다는 의미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

-건축가에서 유적 보존 전문가로 변신했는데.

“개인적인 성공을 넘어 사회에 공헌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코모스로 뛰어들었다. 유적 보존에는 원래 관심이 많았다. 관련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미국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 보존 등 대형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 아바나의 낡아가는 건축물을 보며 유적지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나를 이 길로 이끈 가장 큰 힘이 아닌가 싶다.”

-유적 보존의 원칙은 무엇인가.

“과거를 현재 잣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깨끗한 것이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 무질서해도 원래 그런 모습이라면 그대로 둬야 한다. 그것이 과거에 대한 예의다. 수천·수백 년 된 유적뿐 아니라 수십 년 된 것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이 처음으로 로켓을 발사한 기지 등도 유적지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국과의 인연은?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2007년 처음 찾았을 때 북촌한옥마을과 왕실 관련 유적 등을 둘러보고 다도와 명상을 체험했다. 한식도 맛봤는데 특히 궁중요리가 기억에 남는다. 서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흥미로운 도시라서 유적 보존 분야에서 할 일이 많아 보인다.“

-이코모스 한국 위원회의 활동은 어떻게 평가하나.

“원래 이코모스는 서구 중심의 조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한국 지부 관계자들의 열성적인 활약으로 본부에서 아시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고, 전세계적인 지역 균형도 고려하게 됐다. 한국 위원회의 공이 워낙 커서 설립 10주년을 직접 축하해주려고 방한했다.”

 글=전수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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