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BIS맞추려 기업 대출회수 압박…자금난 최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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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올 연말 국제결제은행 (BIS) 이 요구하는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한 은행들의 네고 (신용장 매입 및 수출대금 대출) 거부사태가 지난 주말부터 급속히 확산되는 데다 기존 대출금 회수 압박이 가중되면서 기업들이 또다시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의 수출입업무도 상당부분 중단돼 특히 무역업체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기업들은 "수입원자재를 가공해 수출하는 것만이라도 풀어달라" 는 호소다.

은행들이 급격한 자금회수에 나서는 것은 이번주에 네고하는 물량의 경우 이달중 입금이 안돼 연말 BIS기준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 자금난 심화 = 연말은 상여금도 지급해야 하고 결제수요도 많아 기업의 자금수요가 집중되지만 은행의 대출금 회수압박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H그룹 재무담당자는 "은행들이 기일이 도래한 신용대출금은 1백% 담보를 요구하거나 일부만 연장해주는 식으로 대출금 회수에 나서고 있다" 고 말했다.

S그룹 관계자는 "신규여신은 안된지 오래고 연말이 다가오면서 당좌를 줄여달라거나 연장을 안해주는 등 은행들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대출금 회수에 나서고 있다" 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사정은 이보다 더 나쁘다.

은행 신규대출이 완전히 끊어지고 정상적인 어음할인도 국민.신한은행 (일부 지역) 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면 중단된 상태다.

서울대방동의 고무패킹 제조업체 C사는 "모은행에 2억원의 어음할인을 요청했지만 15% (3천만원) 만 할인해 주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며 "이런 상황이 연말까지 이어지면 부도업체가 속출할 것" 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종금사.은행들의 만기도래 대출금에 대해 2개월간 연장한다는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전혀 시행되지 않는 점도 최근 자금난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 수출 중단 우려 = 상품을 수출하고 30~1백80일 이후 대금을 받는 외상수출환어음 (D/A.유전스) 할인은 중단된지 오래고, 현금과 다름없는 보통신용장 (at sight LC) 매입마저 은행별로 한도를 정해 제한하다가 이마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BIS 마감기한이 임박하자 19일부터 H은행이 신용장 취급을 전면 중단했고 S은행은 이번주부터 취급한도를 절반으로 줄일 예정이다.

H종합상사 외환담당자는 "H.S은행 뿐만 아니라 나머지 시중은행들도 신용장 매입을 중단 또는 대폭 줄일 것이 확실시된다" 고 말했다.

포철 관계자는 "네고 가능한 은행을 찾는데 초비상이 걸려 있기 때문에 시장개척 활동은 포기상태" 라고 말했다.

삼양사 관계자는 "네고가 25일부터 전면 중단될 것이라는 은행의 통보를 받았다" 면서 "이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살아남을 기업이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 원자재 수급차질 = 수입 업무마저 마비돼 내년 1월중순 이후에는 국내 산업에도 큰 타격이 우려된다.

철강업계는 전기로 등에 사용되는 고철 재고분이 현재 10일분 4억5천만t에 불과해 국내 조달 고철값도 지난 10월 t당 12만3천원에서 최근 15만원까지 올랐다.

강원산업.동국제강 등 5대 전기로업체 사장단은 이와 관련, 22일 긴급모임을 갖고 감산 등의 대책을 논의했다.

석유화학업계도 현재 나프타 재고량이 6백90만배럴로 보름치 물량이 확보돼 있으나 앞으로 도입이 확정된 물량은 열흘분이 조금 넘는 4백66만3천배럴에 불과해 별도의 대책이 없으면 다음달 이후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유업체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의 수입신용장 개설 기피로 향후 도입물량중 상당 부분을 현금도입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어 업체들의 현금동원 능력이 한계에 달하게 될 다음달 중에는 추가 도입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이영렬.홍병기.신성식.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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