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칼럼] 서른살, 신입사원은 서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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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른살인 김모씨. 최근 중견그룹의 계열사에 취직했다. 대입에서 재수를 한 김씨는 군입대 전후로 한 학기를 휴학했고, 군대에서 2년을 보냈으며, 어학연수 1년에 취직을 위해 경영학 이중전공을 하느라 학교를 1년 더 다녔다. 취업 직전에는 경력을 위해 대기업 인턴에 한 학기를 더 할애했다. 돌이켜 보면 자신이 다른 일을 했거나, 남보다 여유를 부리며 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 나이가 되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회사에 들어가자 마자 숨돌릴 틈도 없이 결혼을 생각해야 하고, 본인을 뒷바라지하다 어느새 늙어버린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본인의 처지를 떠올리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자리를 잡지 못한 친구들을 보며 ‘그래도 내가 낫다’는 생각에 위안을 해본다.

늙어가는 사회초년생들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조사에 따르면 2007년 입사한 대졸 신입사원의 나이는 평균 27.3세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결과가 남녀 평균치인 것은 감안하면, 대졸 남자 신입사원의 평균 나이는 28-29세에 이를 것이다. 이 자료에서 보는 것처럼 ‘서른 살 신입사원’은 일부 늦깎이에 해당되는 말이 아닌,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경기불황에 따라 취업문이 점점 좁아지면서, 사회초년생들의 고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위의 조사에서 취업자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는 공기업의 경우 평균 입사연령이 28.1세로 나타났다. 이는 안정성이 높은 공기업을 위해 취업 재수ㆍ삼수를 마다하지 않는 경향이 반영된 것인데, 앞으로는 이런 경향이 기업 유형과 업종에 상관없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변호사, 의사, 치과의사 등 일부 ‘근사한’ 직업을 얻기 위한 전문 대학원 제도가 확산되면서, 청년들의 사회 진출은 더욱 늦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인턴제도, 신입사원 고령화 부추길 수도
최근의 청년 실업의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인턴제도는 이러한 경향을 고착화시킬 우려가 있다. 이전에는 인턴이 ‘있으면 좋은 스펙’ 이나, ‘잘 나가는 애들이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정규직 일자리 대신 인턴의 공급이 늘어나고, 취업문이 점점 좁아지면서 ‘인턴’은 ‘Nice to have’에서 ‘Must have’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즉 과거에는 인턴 경험 없이도 취업을 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불안감에서라도 ‘이거라도 해야’ 라는 마음에 본인의 진로와 관련이 없는 인턴에 시간을 투자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어, 장기적으로 인턴으로 인한 취업 지연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늦어지는 입사시기, 사회적 비용 늘어나
혹자는 평균 수명이 늘어나 제2,3의 경력개발이 필수인 사회에서 첫 취업이 조금 늦어져도 괜찮지 않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아래의 이유들로 인해 청년들의 늦어지는 사회 진입은 사회 전체적으로 큰 손실이라고 생각한다.

◇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지출= 사회 진입이 늦어지면 20대들은 더 많은 시간을 스터디, 영어 연수, 자격증 취득 등 취업 준비에 할애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들이 입사 후의 업무능력향상에 직결되지는 않고, 대부분은 회사 입사 후에 배워도 충분한 것들이며, 어떤 것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다. 즉 20대들은 취업 준비를 위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들이고 비용을 투자하지만, 이는 줄 세우기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한 소모적인 투자가 되기 쉽다. 또한 이런 비용은 모두 이들의 부모에게서 충당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퇴직 후의 삶을 설계해야 하는 부모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 취업 인력들의 경쟁력 저하= 20대들의 취업 전의 오랜 준비는 오히려 이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20대 초반에 사회에 나와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독립적으로 본인의 삶과 경력을 쌓아 나가는 외국의 인력들과 30대가 될 때까지 부모들의 도움을 받아 취업 준비를 하다, 서른이 다 되어서야 겨우 사회에 첫발을 딛는 인력들의 경쟁력 중 어느 것이 더 뛰어날지는 굳이 비교를 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또한 사회에 첫발을 늦게 내딛을 수록 이들에게 허용되는 실패의 범위도 좁아진다. 당장 취업을 해서 결혼을 하고, 이를 위한 결혼자금을 모으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에게 어떤 도전정신과 위험감수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한국 청년들의 늦어지는 사회 진입은 사회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곳에 불필요한 자원을 투입하게 하는 낭비를 초래할 수 있으며, 사회에 새로 진입하는 인력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이는 몇몇 개인에 해당되는 경우가 아닌 사회 전반적인 현상으로,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다음 회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정책적 대응방안과 예비 구직자들이 가져야 하는 자세에 대해 알아보자.

글=유용수 칼럼니스트 ysyoo@nemopartners.com
그림=유지원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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