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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장성고와 거창고를 벤치마킹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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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199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이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최근 5년간 일반계 고등학교 재학생의 수능시험 성적 분석 결과가 공개됐다. 서울과 광역시·일반시 지역과 군 지역 사이에 전반적으로 큰 차이가 존재하지만, 전남 장성군과 경남 거창군은 군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수능에서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나타낸 학교는 장성고등학교와 거창고등학교다. 이유는 무엇일까.

장성고는 기숙형 자율학교다. 2005학년도부터 주변의 시 지역이 평준화돼 우수한 학생들이 이 학교로 유입되고 있으며, 2년 전부터는 전국에서 학생들이 이 학교에 입학하고 있다. 이 학교는 2005학년도(2002년도 입학생)에도 수능시험 성적에서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 따라서 단지 주변 시 지역의 평준화 정책 도입으로 이들 지역의 우수한 학생이 유입돼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보였다고 보기 어렵다. 시 지역의 학생들이 유입되기 전부터 학교의 명성이 있었기에 주변 지역이 평준화되자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거창고는 장성고와 마찬가지로 전국 단위의 기숙형 자율학교로서 대학 진학률이 높으면서도 ‘학생 중심의 자율성 교육’을 하는 곳으로 명성이 높은 학교다. 학생 중심의 자율성 교육은 학교장의 확고한 교육적 신념과 교사의 헌신적 노력, 직원들의 열의와 헌신, 학부모의 학교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성취될 수 없다. 거창고등학교 학생들은 이러한 학교 문화 속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수행한 중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의 종단연구(시간에 따른 연속적인 조사·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생 가정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과외 여부는 개별 학생의 중학교 1학년에서의 학업 성적과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성적 향상에는 영향을 미치지만, 학교 전체의 성적 향상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학교와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성적이 변화하는 정도는 교과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교사의 열의에 영향을 받는다. 이는 어떤 학교에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경우 한 시점에서는 성적이 높을 수 있으나 종단적인 효과, 즉 지속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나타내고 성적이 향상되는 것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능시험의 경우, 학교가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지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학교 교육의 활동이 우수해야 한다. 장성군과 거창군은 경제 수준과 사설 학원 등의 측면에서는 교육 여건이 좋지 않은 군 지역이다. 또 가정의 영향을 덜 받는 기숙형 학교이기에 이들 학교의 높은 학력 수준은 우수한 학생을 선발한 효과 외에 우수한 교육 활동의 효과일 가능성이 크다. 우수한 교육 활동의 핵심은 교원의 열의와 자질, 그리고 학생 개개인의 필요에 부합하는 다양하고 융통성 있는 교육과정 운영이다.

이번 결과 공개로 드러난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교육 당국은 수능 성적이 낮은 지역에 대한 행정·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읍·면 지역에는 우수 교장과 교사를 배치하고, 보다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하고, 교육과정 운영상의 자율성을 더 확대해 학생 개개인의 필요를 충족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해야 한다. 장성고·거창고의 교육 활동에서 특기할 만한 점을 찾아내 우수 사례로 전파할 필요도 있다. 학교가 성적이 아닌 학생들의 인성과 생활인으로서의 자세를 가르치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쓰고, 학생들은 학업 성적에 대한 불안감 없이 각자 학교와 자신이 정한 목표대로 꾸준히 노력하는 거창고의 사례는 수능 성과보다 더 좋은 모범 사례로 전파돼야 한다.

김양분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연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