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세 가지 거짓말’ 일본의 자아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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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주 초 부산에서 한·중·일 30인회의가 열렸다.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다. 통화 스와프의 확대, 아시아통화기금(AMF)의 조속한 창설 등을 각국 정부에 건의키로 하는 등 구체적 결과를 이끌어낸 실용적인 회의였다.

이번 회의를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 중 하나는 사카이야 다이이치 전 일본 경제기획청 장관의 통렬한 자국 비판이었다. 닛케이비즈니스(4월 13일자) 칼럼에도 실린 사카이야 주장의 골자는 그동안 일본 정부가 ▶거짓된 자유화 ▶거짓된 국제화 ▶거짓된 성장이란 ‘세 가지 거짓말’을 해왔다는 것.

사카이야의 주장은 금융위기의 진원지도 아닌 일본이 주요 국가 중 왜 최악의 경제침체를 우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금융기관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작고, 오랜 저금리와 투자규제로 외자 유입이 적어 엔화 가치는 외려 상승한 데다, 수출의존도(10% 중반)도 한국·중국·유럽연합(EU)보다 낮아 상대적으로 타격이 작아야 함에도 왜 더 심한 불황으로 빠져들고 있느냐는 것이다. 사카이야가 요약한 일본 함몰의 이유가 바로 ‘세 가지 거짓말’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문제 삼은 게 ‘거짓된 자유화’다. 그동안 자유화가 진행되어 왔다고는 하나 이는 제조업과 통신 등 일부에 그쳤을 뿐 고령화로 수요가 급증하는 의료나 노인 수발, 교육·방송·농업 등 경제 전체의 절반 가까운 분야가 꽁꽁 묶인 관료체제로 인해 자본·인재가 들어오지 않고 이에 따라 기술진보나 경영쇄신도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제조업·수출 과잉 의존 경제에서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는 현 상황에서도 일손 부족으로 문을 닫는 공립 의료기관이나 노인 요양시설이 나오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자본 이동, 문화정보 전달, 인적 교류에서 여전히 남은 폐쇄성을 지적한 ‘거짓된 국제화’, 모든 나라의 경제가 성장한 2003~2007년 이룩한 약간의 저성장을 전후 최대의 장기성장 운운으로 분칠했다는 ‘거짓된 성장’이 일본 경제를 수렁에 빠뜨렸다는 얘기다.

사카이야의 말을 장황하다 싶게 옮긴 것은 그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일본의 상황이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고민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의료·교육, 나아가 농업에서 국내 산업기반 미비를 이유로 한 여전한 폐쇄적 시각과 이에 기대 정치적 과실을 노려보겠다는 정치권의 행태, 세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국내에서도 외려 강해지고 있는 보호주의적 시각 등 우려되는 점이 한둘이 아니어서다. 이런 것들이 기승을 부릴수록 경제회복과 향후 성장동력의 확보는 더욱 힘든 일이 될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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