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구함" PC통신속 절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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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IMF 한파로 꽁꽁 얼어 붙은 우리 경제. 불황에 취업난.실업까지…. 아르바이트 쪽도 예외일 리 없는데. 설상가상격으로 방학이라 시간은 많은데다 연말이랍시고 돈 쓸 일은 산더미 같은데도 돈 나올 구멍은 없으니. 그렇다고 해서 실의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PC통신 아르바이트란을 잠깐 엿보자. 그곳엔 난국을 타개해보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처절한 몸부림이 있다.

일단 대번에 눈에 띄는 특징 하나. 학력.연령.성별에 관계없이 '아무 일이나' 원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대학생들의 대표적인 아르바이트가 과외지도였던 시절은 이미 옛날. 특기가 설거지라고 한 여대생으로부터 몸으로 때우는 일이라면 뭐든지 잘한다는 남학생까지 궂은 일도 마다않는 것은 이미 일반화한 현상이다.

심지어 노예나 머슴이 되겠다는 이도 있을 정도니까. 잠시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 '머슴이 필요하신 주인 어르신을 찾습니다.

소인은 올해 20살 먹은 (말띠) 몸뚱어리 건장한 사내로서 주인어른 (마님) 이 시키시는 일은 품삯만 두둑히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요!' '몸으로 다 때웁니다.

운전가 (可) .' '뭐든지 시켜만 주세요 다 잘합니다.

' '일만 시켜 주세요…싹싹 - 일두 잘하구요. 말두 잘 듣구요. ' '살인 빼곤 다 함. ' 무능하고 재주없는 사람만 그러는거 아니냐고?

모르는 소리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주를 주욱 나열해 놓고 '입맛대로' 골라 쓰라는 경우도 허다하다.

워드작업과 피부관리, 과외.노가다.컴 (컴퓨터) 관련직.글쓰기, 계산.서빙.물건 판매.캐드작업 등 한 사람이 3~4가지 경험과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은 기본. 이와 함께 전공과 재능을 살린 이색 아르바이트도 속출하고 있다.

벽화를 그려준다는 미대생, 저렴한 가격에 무용복을 만들어 준다는 의상학과 학생, 홈페이지 제작해 준다는 인터넷회사에 다니는 회사원 등등. 재주도 가지가지다.

목소리가 예쁜 20대 여성은 한달 1만5천원에 모닝콜 서비스를 해주겠다고 나섰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대화상대가 되어주겠다는 청년도 있다.

종이학 1천마리를 우송료 포함해 2만원에 판다는 광고도 자주 등장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성역할도 점점 파괴되어 가고 있다.

'힘센 남자 파출부 쓰세요 - 가정의 힘든 일, 자녀의 등하교 문제, 밑반찬 등등 모든 일을 도우려 합니다.

여자가 할 수 없는 힘든 가정일을 깨끗하게 처리해 드립니다.

집을 지켜드리는 일도 여자보단 남자가 믿음직하죠. 필요하신 분은 하루전에 메일주시면 달려가겠습니다.

' 구직자들은 하루에도 1백여건이 넘게 올라오는 글 가운데 조금이라도 튀기 위해 독특한 제목으로 시선을 붙잡기도 한다.

'알바 그것이 하고 싶다' '과외를 하면 성적이 보인다' '고1 백수에게 새생명을' 등 패러디형, '사장님 여길 봐주세용' '아저씨 나야, 사모님 저예요!

고품질 일꾼' 이란 애교형, '저 죽습니다.

제발 일 좀' '일 너무 잘해 따귀 맞았습니다' 라는 엄살.과장형까지. 이렇게까지 해도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저렴한' '값싼' 등은 관용어가 된 지 오래. '경제위기는 위기인가 보네. 아르바이트 자리도 없으니' '내가 노니 경제가 이모양!' 이란 자조섞인 말까지 나올 정도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지만 고생하려고 작정했는데도 고생할 수 없으니. 누구라도 그 기회를 만들어 주소서.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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