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역사의 승계와 단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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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대중 (金大中) 국민회의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미시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 당선 때와 함께 기네스 북에 오를 만한 극적인 개표 드라마였다.

역사의 망원경을 통해 보더라도 그것은 의미심장한 서사극이다.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의 뒤를 이어간 전두환 (全斗煥).노태우 (盧泰愚) 대통령은 朴대통령이 권력의 기반으로 길렀던 하나회 핵심인사였다.

그들의 시대는 거 (去) 했고 그뒤 역사를 이어가는 문민대통령은 아이로니컬하게도 朴대통령의 양대 정적 (政敵) 이다.

朴대통령의 딸 근혜 (槿惠) 씨가 18년만에 장막을 걷고 세상에 나와 김대중후보의 등장을 막기 위해 애를 썼지만 역사는 그런 선택을 했다.

12.18 대선은 역사의 무서운 복원성 (復元性) 을 보여준 것이다.

새 대통령이 나올 때마다 우리 사회는 역사의 승계와 단절에 대해 한바탕 회오리를 겪곤 했다.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은 승계와 지속을 향한 여러 호소를 외면한채 단절의 외곬을 내달았다.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단절의 조치는 계속됐다.

朴대통령이 땀을 흘렸던 집무실과 거소를 포클레인으로 허물어버렸다.

아태경제협력체 (APEC) 회의에서 외국 정상들은 그에게 갈채를 보냈다.

그는 그 갈채를 전부 '최초 문민대통령' 에 대한 기립박수라고 여기는 것같았다.

단절엔 참으로 어이없는 일도 많았다.

한때는 문민정부의 정통성이 상해 (上海) 임시정부에서 바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어설픈 것도 있었다.

역사의식이 짧은 참모들이 많았다고는 하나 그 자신이 그런 잘못된 것을 교정 (矯正) 하려는 노력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대선땐 구미의 생가에 가서 朴대통령 기념관을 짓겠다고 약속해놓고는 집권 후엔 이를 기억하지도 않았다.

김대중당선자는 19일 국립묘지에 가서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묘소에 머리를 숙였다.

그는 대선때 朴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했다.

金당선자의 등장으로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지배구조와 지도층 사회의 가치관에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개혁의 바람이 불 것이란 조용한 침묵이 있는 것이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 필요한 개혁은 강하게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전임자가 저지른 역사 승계에 대한 어설픈 개혁이 반복돼서는 안될 것이다.

그가 정권교체를 이루었지만 그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역사라는 부동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정민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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