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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본 이야기, 다시 보게 만드는 재창조의 즐거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0호 04면

영화를 원작으로 삼은 뮤지컬이 대세다. 흔히 ‘무비컬’(Muvical=Movie+Musical)로 불리는 이 작품은 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멋진 노래가 실려 있던 영화를 무대용으로 다시 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영화로 이미 히트한 작품을 왜 다시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만드는 사람이야 그렇다 쳐도, 그럼 관객들은 영화로 본 작품을 왜 또 보러 가는 것일까. 줄거리도 알고 노래도 아는데. 그래서 현재 국내에서 인기리에 공연됐거나 공연 중인 뮤비컬을 만든 제작자 8명에게 물었다. “왜 당신은 이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었습니까”라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나로 정리했다. 이는 2009년 한국 대중문화의 주류가 돼 도도히 흐르고 있는 뮤지컬 산업의 현주소를 가늠해 보는 내비게이터이기도 하다.

영화는 어떻게 뮤지컬이 됐나

왜 이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었습니까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을 내세우면 좋겠지만 아직 국내 뮤지컬계의 인프라가 약합니다. 그래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인지도가 높으면 투자받기도 쉽죠.

제작자 입장에서는 시나리오와 캐릭터를 무대 언어로 바꿨을 때 어떤 가능성이 나올 것인지 가장 신경 쓰게 됩니다. ‘마이 스케어리 걸’의 경우 ‘달콤살벌한 연인’이 영화로 제작되기 전인 2006년 우연히 대본을 먼저 봤습니다. 대본이 탄탄했고 캐릭터가 살아 있는 데다, 살벌한 상황과 달콤한 음악의 공존, 즉 호러와 코미디의 결합이 효과적일 것이라 여겼죠.

시장도 생각해야죠. ‘대장금’은 워낙 다른 나라에서 인지도가 커서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어느 나라에서나 통하는 주제, 즉 뛰어난 여인이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석세스 스토리’거든요. ‘라디오 스타’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비와 당신’이라는 노래와 가사가 너무 좋았습니다.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박중훈씨가 앨범을 낸 줄 알았어요. 다음에 영화를 봤고, 이 얘기는 전 세계 어디서나 통한다고 생각해 작품을 만들게 됐습니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경우 주연의 캐릭터가 강했고, 조연들의 캐릭터 역시 확실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화적으로 크게 성공하지는 않았는데요
흥행 여부보다 중요한 게 제작자와의 궁합이라 할 수 있죠. ‘내 마음의 풍금’의 경우 첫사랑의 설렘과 슬픔의 느낌을 담고자 하는 제작자와 통했죠. 제작자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나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분위기를 내는 데 딱이라고 여겼거든요.

타깃층도 중요합니다. ‘싱글즈’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지만 이제는 하나의 독립적인 계층으로 정의된 ‘싱글’들의 정서를 잘 담고 있습니다. 이는 뮤지컬의 주 소비층과도 잘 맞아떨어지거든요. 뮤지컬은 영화와 다릅니다. 영화는 매번 봐도 똑같지만, 뮤지컬은 출연 배우가 누구인지, 어디서 만들었는지, 어느 극장에서 했는지 등에 따라 매번 느낌이 다르거든요. 입체적인 무대를 통해 배우와 관객이 서로 교감하는 거죠.

영화 속에는 노래가 안 나왔지 않습니까
뮤지컬에선 노랫속 대사가 가장 중요한 전달 방식입니다. ‘내 마음의 풍금’의 경우 시골 학교의 신남, 설렘, 왁자지껄함을 신나는 노래로 표현했죠. 극 중 케니 브라운의 팝송 ‘스프링타임’도 사실 우리가 만들어 낸(작사·작곡한) 곡입니다. 올드 팝의 멜로디와 가사를 통해 분위기를 전달한 거죠.

‘마이 스케어리 걸’의 음악을 위해 강경애 작가와 작곡가 윌은 오랜 기간 대본과 음악 작업을 함께했습니다. 윌은 팝·재즈·보사노바에 트로트까지 적용해 극적인 긴장감을 살렸지요.

‘싱글즈’에는 음악적 요소가 없었지만, 캐릭터 하나하나의 매력을 무대에서 배가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 소비층인 2535 관객의 귀에 쏙 들어가는 뮤지컬 넘버를 만드는 데 주력했죠. 신나는 곡, 애절한 곡, 깜찍한 곡 등 배분을 다채롭게 했습니다.

영화와 어떻게 차별화하려고 했습니까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은 사실적 고증에 충실했습니다. 옛날 학교 분위기를 위해 디테일까지 신경 썼죠. 하지만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은 마음에 남아 있는 향수를 그려 내려고 했습니다. 진흙놀이를 연상시키는 학교, 빛바랜 핑크 톤으로 무대를 만든 것도 풋사랑의 이미지를 위한 것입니다.

‘대장금’의 경우 드라마를 그대로 축소한 초연 작과 달리 수정본에서는 조광조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부각시켰죠. 연출·작곡·안무 모두 완전히 새로 했습니다. 덕분에 한결 나아졌다는 반응을 얻었지만 대중성이 약하다는 지적은 여전했어요. 그래서 이번 5월부터 선보이는 새 수정본에서는 엔딩 신에서 장금이를 다시 나오도록 했습니다. ‘대장금’을 관통하는 주제가인 “오나라 오나라~”를 결국 못 쓰게 된 것은 아쉽습니다. 작곡가가 다른 비즈니스를 할 모양인지 “뮤지컬에 쓰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미녀는 괴로워’의 주인공 한나는 제겐 수퍼맨·스파이더맨에 버금가는 통쾌한 캐릭터였죠. 그녀가 보여 주는 ‘괴물적인 가창력’을 제대로 보여 주는 데 주력했습니다. 영화 ‘싱글즈’는 단선적인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는 드라마라서 자칫 지루할 수 있죠. 그래서 드라마는 가져가되 귀엽고 코믹한 안무, 그때그때 상황을 경쾌하게, 때론 애절하게 풀어내는 뮤지컬 넘버로 승부하고자 했죠. 무대를 가득 메운 빨간 하이힐 침대 같은 소품까지 화려한 볼거리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무비컬의 미래는 어떻습니까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입니다. 쉬운 일이 아니죠. 영화의 경우 1990년대 후반부터 좋은 인력이 영화판에 대거 들어왔습니다. 덕분에 한국 영화가 급성장했죠. 특히 시나리오에 공을 들여 탄탄한 시나리오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 영화에 빚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금이 과도기인 셈이죠.

하지만 뉴욕과 런던에서 뮤지컬을 제대로 공부한 유학파,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공부한 재주꾼들이 속속 뮤지컬 업계로 들어오고 있는 만큼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도 머지않아 크게 성공하는 작품이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냥 영화가 성공했으니 뮤지컬도 성공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과 짧은 제작 기간을 갖고 만들면 흥행성도 작품성도 얻지 못하겠죠. 게다가 투자 유치를 쉽게 하기 위해 스타를 기용하고 그러다 보니 거품 몸값이 생겨 시장 질서가 망가진다면 그거야말로 안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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