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도박판에서 벌어지는 남북 첩보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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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호 13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문학, 새로운 서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예술성 추구라는 족쇄를 벗어버리고, 금기시돼 온 SF·판타지·추리 등 장르 문학에 문호를 개방한 대형 문학상(상금 기준이긴 하지만)들이 잇따라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이대로 가다가는 문학이 고사한다는, 이른바 ‘위기론’에 바탕하고 있다. 위기 타개를 위해 무엇보다 작품이 재미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설 테이블 위의 고양이, 신경진 지음, 문이당, 384쪽, 1만1000원

소설가 신경진(40)씨는 한때 이런 논의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2007년 장편소설 『슬롯』으로 1억원 상금의 세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 이야기는 도박과 여자에 관한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슬롯』은, 이혼한 옛 애인이 도박 자금 10억원을 싸들고 주인공 사내 앞에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심사위원들은 재미와 감동 모두를 갖췄다며 상을 안겼다.

책은 신씨가 ‘화려한 등단’ 이후 2년간 칩거하며 준비한 새 장편이다. 『슬롯』과 비교하자면 ‘도박과 여자에 관한 이야기’에서 ‘여자’ 대신 ‘첩보전’을 끼워넣어야 할 소설이다. 동양의 라스베이거스인 ‘도박 천국’ 마카오의 카지노가 배경이다. 국정원 직원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이를 둘러싼 남북 정보기관원들의 팽팽한 대립이 숨막히게 펼쳐진다.

소설은 천천히 뜨거워진다. 주인공은 라스베이거스에도 이름이 알려진 한국계 캐나다인 도박사 제이슨 리. 부동산 투자 등이 연거푸 실패하며 파산하다시피 한 제이슨에게 어느 날 국정원 직원이 찾아온다. 한동안 마카오에서 어울렸던 도박 친구 강지수가 사실은 국정원 직원이었으며 얼마 전 피살돼 수사 중이라는 것이다. 술과 도박, 여자 이외에는 세상 일에 도무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삭막한 감성의 제이슨이 뜻밖에도 친구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찾아나서며 소설은 ‘진실 찾기’ 첩보 탐정물이 된다.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짜릿한 재미는 소설 후반부에 찾아온다. 『슬롯』에서 신씨는 도박 전문가의 저서를 인용해 “카지노는 자본주의의 최고 영역이다. 돈이 말을 하고 돈이 결정한다. 노골적이며 타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밝혔었다. 도박의 무서운 점 중 하나는 타협할 수 없다는 점일 게다. 결국은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는 마지막 한 판과 에누리 없이 맞닥뜨려야 한다. 영화 ‘타짜’에서도 주인공 ‘고니’와 상대역 ‘아귀’는 수억원의 판돈 말고도 지는 사람의 한 쪽 팔뚝을 자르기로 하는, 무시무시한 막판을 벌인다.

소설의 주인공 제이슨은 보다 복잡한 ‘막판’에 처한다. 북한 공작원의 ‘무한 신뢰’를 받아 도박을 통해 그들의 외화벌이를 도와야 하는 기상천외한 상황이지만 실은 일부러 도박판에서 돈을 잃으라는 국정원의 지령을 진작에 받은 상태다. 말하자면 도박판에서 져야 현실의 그는 살게 되는 셈이다. ‘섰다’와 비슷한 ‘바카라’ 도박에 나선 제이슨. 그는 한 번에 100만 달러씩, ‘살 떨리는’ 베팅을 감행한다.

베팅의 결말이 궁금하신가? 직접 확인하시라. 소설은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남북 첩보전에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하지만 대북 송금 특검 수사 등을 통해 익히 알려진 조광무역, 방코델타아시아 은행 등 신문 보도 수준의 정보들을 소설 배경으로 제시해 신선함을 스스로 갉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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