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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깊이 읽기] 사람은 도시를, 도시는 역사를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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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도시와 인간
마크 기로워드 지음, 민유기 옮김
책과함께, 688쪽, 4만8000원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몇 년 전 파리 한 복판에 전에 볼 수 없었던 종합 위락시설 하나가 들어섰다. 대형 아케이드 방식의 팔레 우아얄, 가운데에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원형극장이 있고 터키탕·도박클럽·연극 공간 등 부대시설을 자랑했다. 위층에는 예술가·매춘부들이 득시글거리며 진 쳤으니 꿈의 공간이자 도시의 꽃이었다.

점차 목소리를 높여가던 시민계층이 즐기던 공간이었는데, 이곳의 인기 코너는 카페였다. 초콜릿·차와 함께 ‘역겨운 검댕이 음료’ 취급을 받았던 커피를 팔던 그곳은 유럽의 최신 뉴스가 오가던 길목이자 뜨거운 정치토론장이었다. 근대적 신문이 채 모습을 드러내기 전인데, 그 때 파리 시내의 카페는 18세기 말 4000개로 늘었다.

중세에서 20세기까지를 다룬 서양도시문화사 분야의 책인 『도시와 인간』에 따르면, 인기는 런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커피하우스로 불리면서 환영 받기 시작했다. 그때 떴던 유럽사회의 논객들이 볼테르를 비롯해 디드로·루소 등이다.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으로 프랑스 혁명이 막 불 붙었을 때 카페가 뜨거워진 것도 물론이다. 팔레 루아얄은 연설·논쟁의 중심이었다.

도시를 만든 것은 사람이지만, 상품만이 아니라 사상도 생산해냈던 것은 도시였다. 이 책은 특수사의 읽을거리. 사람냄새가 진하다. 11세기 중세 도시의 부활을 이끌었던 콘스탄티노플에서 시작된 저자의 여행은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한 베네치아·제노바를 거쳐 17~18세기 암스테르담과 파리, 19세기 이래 산업도시인 런던·맨체스터·뉴욕으로 이어진다.

확실히 도시의 성공은 절대왕정 시대가 전성기다. 중앙정부의 금고가 두둑했던 이때 수도에 으리번쩍한 공공건물 짓기 경쟁이 시작됐다. 의사당·관공서·법원·병원이 그렇고, 교도소만해도 엄청 신경 써서 지었다. 국가의 위신을 보여주기 위한 ‘허우대 경쟁’이다. 관공서의 경우 실제 사무 용도로 쓰인 공간은 3분의 l도 안 되며, 나머지는 주거시설도 겸했다.

초고층빌딩(마천루) 등장도 20세기 이후의 산물이다. 1940년대만해도 뉴욕·시카고에는 20층이 넘는 건물은 손꼽을 정도였으니, 유럽의 주요도시에서는 미국식의 오만한 대형건물에 거부감을 가졌다. 그 사례가 19세기말 런던 시내에 등장했던 14층 짜리 공동주택(높이 52m). 빅토리아 여왕은 격노했다. 버킹엄 궁전을 내리깔고 보기 때문이었다. 도시 고도제한법이 만들어진 것이 그때가 처음이다. 300장이 넘는 화려한 도판이 볼거리로 훌륭한데 비해 서술은 전문가 수준이라서 그게 좀 걸린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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