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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대선]승인분석…김대중·김종필연합, 경륜위력 경제난도 한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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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당선자의 승인 (勝因) 은 크게 두가지다. DJT연합으로 하부구조를 탄탄히 굳힌 것과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신청으로 대표되는 금융·경제위기를 맞아 화이트 칼라 등이 그의 경륜을 평가한 때문이다.

DJT연합과 관련, 92년 대선패배 이후 지금까지의 정치역정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95년 6.27 지방선거. 정치에서 한발 빼고 있던 DJ가 전격적으로 유세장에 나타나 당시 야당인 민주당 지지를 호소하자 엄청난 효과가 나타났다. 반 (反) DJ유권자들이 '어어' 하는 사이에 민주당은 압승을 거뒀다.

김영삼 대통령의 '팽 (烹) 시도' 에 분개, 여당을 박차고 나와 자민련을 창당한 JP도 선전했다.

金대통령은 대대적인 여당 보강 작업에 나섰고 2라운드격인 4.11총선에서 DJ가 창당한 국민회의는 예상밖의 패배를 기록했다.

원인은 야권 분열. 그는 이의 해결책을 민주당과의 재통합에서 찾지 않고 제3당으로 떠오른 김종필총재와의 연대에서 찾았다. 수도권에서 낙선한 많은 당내 중진들이 이를 권했다. 충청표와 합치기만 하면 이긴다고 권유했다. DJ집권에 장애가 돼온 색깔시비·북풍 (北風) 차단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1년반에 걸친 지루한 협상끝에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후보 단일화가 이뤄졌다. 'DJ에게 정권을 줄 수 없다' 는 상당수 영남 유권자가 이회창후보를 대항마 (對抗馬) 로 선택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바로 이즈음 IMF금융위기가 대두됐다.

지역주의적 투표성향, 특정인에 대한 거부감을 압도했다. DJ진영은 이를 맞아 '경제 대통령 김대중' '외교 대통령 김대중' 을 적극 홍보하기 시작했다.

호감도에서 다소 약하지만 그간의 오랜 정치활동과 해외활동을 통해 자질면에서 국민들의 인정을 받아온 게 큰 도움이 됐다.

국민회의 관계자들은 이 변화를 두고 "IMF위기가 한국을 정치 중진국으로 변화시켰으며 이제 김대중대통령 밑에서 경제도 큰 변화를 맞게 될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동초 (忍冬草.金당선자의 고난에 찬 정치역정을 두고 부르는 말)' 의 승리는 어렵기만 했다. IMF재협상 발언으로 야기된 역풍은 거칠기만 했다.

60%쯤의 비 (非) DJ표를 놓고 이회창후보와 각축을 벌이던 이인제 (李仁濟) 후보는 막판 양자대결구도가 부각되며 심한 내부 균열을 겪어 이회창후보의 승리를 점치게 했다.

그럼에도 金당선자는 50년만의 정권교체로 난국 극복을 바라는 수도권 민심의 대이동에 힘입어 이회창후보를 최후의 순간 따돌릴 수 있었다. 기대했던 1백만표 만큼은 안되지만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준은 됐다.

정치공학적으로 보자면 충청권에서 DJ가 1위를 달리고 이회창후보가 2, 3위권을 달린 점, 중립지역인 인천과 경기에서 DJ가 1위를 기록한 것, 영남권에서 이회창후보가 65%이상의 몰표를 챙기지 못한 점 등이 이미 정권교체의 전주곡이었다.

정권교체라는 구호가 좋았고, 금융위기라는 상황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본인의 준비와 참모들의 전략도 대체로 괜찮았다. 또 금융위기가 터지자 즉각 'IMF의 치욕, 1년반안에 극복하겠습니다' 라고 홍보전을 펼친 것, 방송광고에서도 한나라당보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놓은 것 등 전술상 승리요인은 따지자면 많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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