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수화가 석창우의 '누드크로키' 동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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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선지에 붓이 스치자, 눈 앞에 서 있던 나체의 모델이 화선지 위에 옮겨온다. 모델의 몸짓이 빨라질수록 붓도 바빠진다. 화가의 능숙한 붓질은 나체의 모델이 아닌 화가의 손으로 시선을 이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건 체온이 느껴지는 다섯손가락의 손이 아니라 딱딱하고 차가워 보이는 갈고리다.

‘대한민국 제1호 의수화가’ 석창우의 26번째 개인전의 시작을 알리는 누드 크로키 시연 현장이다. ‘의수화가’라는 호칭에서 알 수 있듯, 석창우에겐 두 팔이 없다. 29살 전기기사 석창우의 몸에 흐른 2만 볼트의 전기에 그는 두 팔을 내주고 그림이라는 벗을 얻었다. 그림을 그려달라고 조르는 네살배기 아들에 못이겨 그는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우연히 그린 그림 한장이 그의 재능을 일깨워줬지만 여전히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서예에서 사군자로 다시 수묵화, 크로키, 누드 크로키까지, 두 팔이 없다는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데는 꼬박 6년이라는 시간과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빠른 시간에 움직이는 모델을 그리는 크로키, 두 팔이 없는 장애인에게 쉽지 않은 분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서예로 닦아온 기본기를 바탕으로 ‘수묵 크로키’라는 화풍을 확립했다.

그림은 석창우와 세상을 이어줬다. 그는 26번의 개인전과 180여 회의 그룹전을 통해 세상과 대화했다. 대화는 조인스 블로그와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도 계속됐다. 2004년 처음 문을 연 조인스 블로그는 ‘파워 블로그’로 선정될 만큼 찾는 이가 많다. 이같은 소통의 흔적일까. 의수 끝에 달린 고리로 수없이 내려 찍은 듯 키보드 자판에는 한글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석창우는 또 다른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피겨 여왕’ 김연아와 그녀의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가 얼음판 위에서 펼치는 아름다운 연기를 화선지 위로 옮기는 것이다. 특히 절정에 오른 김연아의 연기는 그 자신도 모르게 얼음판위로 빠져들게 한다. “운동선수들이 전성기일 때 작품을 하면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그의 말에서 기대와 흥분이 느껴진다. 석창우는 내년쯤에는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를 그린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두 팔을 내주고 희망을 얻은 의수화가 '석창우'의 누드 크로키 시연과 그의 작품은 아래 동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글 뉴스방송팀 송정 작가
영상 뉴스방송팀 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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