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머·전기톱 국회’의 반성문 … 정치, 필리버스터를 내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조만간 우리 국회에서도 의원들이 몇 시간씩 마이크를 잡고 연설하는 장면을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국회에서 필리버스터(filibuster·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제도 도입 논의가 무르익고 있는 까닭이다. 지난해 연말 국회의 극렬한 폭력사태에 대한 반성문일까. ‘몸싸움’ 대신 ‘말싸움’으로 승부를 내자는 얘기다.

한나라당 유정복 의원은 13일 필리버스터와 법안 자동상정제 도입 등이 담긴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내 친박근혜계 의원들이 주축이 된 선진사회연구포럼 회장인 유 의원이 포럼 토의 결과를 집약해 제출한 국회 개혁안이다. 한나라당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공식 발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의에 참여한 32명의 의원은 대부분 친박계다.

유 의원의 개정안은 본회의 의결이 있거나 재적 의원 5분의 1 이상 요구가 있을 경우 의원들이 횟수와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마음껏 토론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소수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해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이 있으면 의장이 토론 종결(클로처·cloture)을 선언할 수 있다.

개정안은 또 신속한 법안 처리를 위해 법안이 상임위에 회부된 지 30일(폐회 기간은 제외)이 지나면 자동 상정되게끔 했다. 법사위는 다른 상임위에서 법안이 이송된 지 30일이 지나면 법안을 자동 상정하고, 상정된 지 60일 이내에 의무적으로 심사를 마쳐야 한다. 이 밖에 ▶임시회는 회기 개시 첫 2주간 상임위 개회 ▶국회 운영 전반에 관한 사항을 협의하는 국회운영협의회 구성 ▶폭력 의원 징계안 본회의 자동 부의 등을 담았다.

유 의원은 “매년 되풀이되는 국회 파행과 여야 간 폭력사태를 막고, 상임위 중심의 국회 운영을 실현하기 위해 의원들 사이에서 널리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사안들을 추려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역시 지난 9일 박상천 의원 대표발의로 필리버스터 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박상천안’은 ‘유정복안’과 마찬가지로 재적 의원 5분의 1 이상 요구가 있으면 ‘법률안 조정절차’를 시작하고 이 조정 기간에 필리버스터를 허용했다. 다만 토론 종결의 요건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유정복안’보다 까다롭다. 한나라당 내 소장파 의원 모임인 ‘민본21’도 8일 개최한 국회 개혁 토론회에서 재적 의원 4분의 1 이상 요청으로 필리버스터를 허용하고,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동의로 토론을 종결하는 방안을 도입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토론 종결 요건은 민감한 문제다. 5분의 3으로 하면 한나라당(170석)이 자유선진당(18석)만 설득하면 표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3분의 2일 경우 자유선진당뿐 아니라 친박연대(8석)와 일부 무소속 의원까지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 된다.

국회 개혁 문제를 다룰 국회 정개특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해머·전기톱 사태의 후유증으로 필리버스터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세부적 사항은 여야 간 타협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정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