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억원 빼돌린 ‘횡령 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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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대전지검 홍성지청(지청장 곽규홍)은 16일 별도의 전산시스템을 설치해 고객예탁금 1500여억원을 빼돌린 혐의(횡령)로 홍성군 광천읍 광천새마을금고 전 직원 20명 가운데 이모(62) 전 이사장 등 임원 4명을 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1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씨 등은 1999년 4월께 컴퓨터프로그램 업체에 의뢰, 새마을금고연합회 전산시스템과 별개의 전산시스템을 만들어 직원 10여 명의 컴퓨터에 설치한 뒤 지난해 5월까지 조합원 5880명의 정기예탁금을 별도로 관리해 온 혐의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조합원이 예금을 하기 위해 금고에 찾아오면 전국 새마을금고연합회 전산시스템에는 계좌가 존재하지 않는 이른바 대포통장을 발행해 주고 그 예금을 별도의 거래시스템에 입금했다.

이 전산시스템(일명 화목한 가정)은 온라인이 안 돼 광천새마을금고 이외 지점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이들은 또 고객이 만기가 되기 전에는 출금하지 않는 정기예탁금만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별도 관리한 고객예탁금 가운데 168억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해 금고에 손해를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전 이사장 이씨는 116억원을 자신이 운영하는 축산영농조합 통장으로 빼돌린 뒤 축사 부지 구입 비용 등으로 썼다. 창구 여직원 A씨는 1억5000만원을 빼돌려 명품 가방 등을 구입했다.

홍성지청 권중영 부장검사는 “이사장부터 창구 여직원까지 전 직원이 횡령 계획을 공모하거나 조합원 예탁금을 빼돌리는 과정에 가담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새마을금고연합회 감사에서는 별도의 전산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정상적으로 처리한 것처럼 허위 서류를 작성하는 방법으로 범행을 숨겨왔다.

그러나 이들의 범행은 한 조합원이 다른 지점에서 예탁금을 찾으려 했으나 전국 새마을금고연합회 전산시스템 계좌에 자신의 예금이 한 푼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고발하는 바람에 적발됐다.

이들의 횡령 행각이 드러나면서 광천새마을금고는 지난해 9월 해산됐다. 조합원들이 피해를 본 168억원은 새마을금고연합회 공공자금으로 대신 갚았다.

홍성=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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