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제일의 부자 미술재단 게티센터,10억달러들여 15년만에 건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미국 로스앤젤레스 (LA) 다운타운 서쪽에 있는 부촌 (富村) 브렌트우드. 한때 미식축구선수 O.J.심슨이 살았던 곳으로 전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던 곳이다.

여기에 미술재단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폴 게티재단이 15년동안 무려 10억달러를 들여 건립한 게티센터가 들어섰다.

16일 처음으로 위용을 드러낸 게티센터는 구석구석에서 부자재단의 냄새가 풀풀 난다.

우선 위압적인 규모. 전체 면적이 24에이커 (약3만평) 다.

그중 폴게티재단 산하의 박물관.도서관.연구소 등이 들어선 건물 6개가 차지하는 면적만 5에이커 (6천여평) 이며 나머지 공간은 정원으로 꾸몄다.

운이 좋으면 정원을 거닐다가 사슴도 만난다.

연한 베이지색과 흰색으로 꾸민 박물관 외벽에 태평양 저편으로 떨어지는 태양의 노을빛이 반사될 때면 풍경만은 거의 환상적이다.

게티센터는 첨단 기술을 백분 활용, 박물관의 교육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21세기 박물관의 전형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미국 서부지역에서는 동부의 고급문화와 서부의 대중문화로 나누던 시대를 마감하는 사건이라고 연일 떠들썩하다.

게티센터로 들어가보자. 우선 들어서면 누구나 입구 주차장에 차를 버리고 전차처럼 생긴 트램으로 갈아타야만 한다.

이 트램은 첨단 컴퓨터장치로 움직인다.

트램을 타고 느릿느릿 언덕 풍광을 즐기면서 한 5분쯤 올라가면 박물관 앞에 닿는다.

태평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박물관을 중심으로 연구소.식당과 카페.4백50석규모의 강당.게티재단본부 등 5개 건물이 퍼져 있다.

박물관의 전시실은 54개. 개관기념 전시로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미술이 후대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한 '아름다움을 넘어서 : 고대전' 과 '게티센터의 기획에서 완공까지' 가 마련되고 있다.

또 그동안 일반에게 선보이기 어려웠던 프랑스 궁전장식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는 1690년에서 1705년 사이 프랑스 보베에서 제작된 태피스트리와 루이 14세가 사용했던 카펫등이 박물관에 우아함을 더해준다.

어느 박물관이든 그림 손상에 대한 우려 때문에 자연광을 쉽게 허용하려 들지 않는데 비해 게티센터는 회화전시관 20곳의 조명을 미늘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으로 대신 하고 있다.

햇살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미늘창살의 위치를 움직여 조명을 2백~2백50 럭스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했다.

이런 첨단시설과 전시작품도 중요하지만 박물관에 들어있는 도서관과 패밀리룸.정보실.디지털룸.교육연구소 등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1세기 박물관의 문화교육기능이 바로 이런 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나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온갖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꾸몄다.

박물관에 들어있는 4군데의 정보실에 들어가면 인터넷의 게티센터 웹사이트 (www.getty.com) 를 통해 실물을 만지는 것 이상으로 작품을 세밀하게 감상할 수 있다.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작품사진은 물론이고 관련정보가 엄청나게 쏟아진다.

교육연구소 역시 교사들이 역사.문학.미술을 가르치다가 비주얼 자료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쉽게 얻을 수 있도록 인터넷 (www.artsednet.getty.edu)에 자료를 풍부하게 올려놓고 있다.

도서관에는 미술 관련 도서만 80만권이 넘는다.

게티센터의 설계는 프랑크푸르트의 장식미술관과 아틀란타의 하이뮤지엄등을 설계한 미국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맡았다.

이처럼 캘리포티아 주민들에게 문화적 자존심을 살려준 석유재벌 폴 게티는 당초 1954년에 세금감면혜택이나 받을 생각으로 캘리포니아주 말리부에 폴 게티 뮤지엄을 연 구두쇠 억만장자였다.

그런 그가 76년에 눈을 감으면서 게티석유회사의 주식 4백만주를 말리부의 게티미술관 앞으로 남겼으니 세상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시세가 7억달러였던 것이 유산을 둘러싼 법적절차가 해결된 82년에는 12억달러로 불어났으며 지금은 최고 60억 달러로 추산된다.

그러나 게티 센터 콜렉션의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뒤늦게 콜렉션에 뛰어들어 다양하지 않다는 것. 그런 한계 때문인지 게티박물관은 동양미술품이 적다.

존 월시 박물관장은 이를 의식한듯 "앞으로는 작품을 수집할 때 소수민족과의 유대를 고려하겠다" 고 말했다.

LA근처 말리부에 있는 로마풍의 기존 게티박물관은 4년동안 수리작업을 거친 뒤 게티센터의 고대 로마.그리스시대 작품들을 옮겨와 전시하게 된다.

LA=정명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