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조기출범론 왜 나오나…당선자에 힘 실어줘 난국수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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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가 부도 (不渡)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18일 대선 직후 대통령당선자가 직접 국정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내년 2월25일의 취임을 기다릴 계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단순한 국정공백을 줄이는 차원이 아닌, 국가파산을 막기 위한 것인 만큼 최소한 당선자가 지명한 총리 및 각료들이 국정을 담당함으로써 민심을 안정시키고 대외적인 신인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청와대측도 경제쪽은 당선자측에 맡겨 위기를 타개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어서 정국혼란은 상당부분 진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이 고민하고 있다.

대선 직후부터 새 대통령 당선자와 함께 국정을 꾸려가라는 여론의 압력 때문이다.

아예 전권을 위임하라는 소리도 읽고 있다.

자존심 상하지만 金대통령으로선 국정운영 방식의 기본적 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11일 대통령 담화에 대한 여론반응에서 나타났듯 어떤 대책.하소연도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다.

외국투자가들도 IMF 지원조건을 지키겠다는 金대통령의 다짐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金대통령은 이같은 권위추락과 국민감정을 잘 듣고 있으며, 결국 대통령의 권한 상당 부분을 내주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고 있다고 12일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그 첫번째 시사가 담화 속의 "당선자와 긴밀히 협의하겠다" 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 구절을 넣기 위해 金대통령은 고심했고, 진통이 있었다" 고 소개했다.

또다른 당국자는 "金대통령은 당선자가 외환위기 수습의 정책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생각" 이라고 말했다.

비서실 일각에서는 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현재의 대략적 구상은 경제쪽은 당선자의 인원 배치.정책 구상을 전폭 수용해 밀어주는 것이다.

즉 당선자가 경제부총리나 장관을 바꿔달라면 응한다는 얘기다.

사의를 표시한 이경식 (李經植) 한은총재를 바꾸지 않는 것도 金대통령이 당선자의 후임 인선안을 기다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경제부처 장관들과 김만제 (金滿堤) 비상경제대책 자문위원장으로 구성된 '경제대책회의' 개편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새 당선자가 이 회의를 주재, '경제 국무회의' 처럼 만들어 실질적으로 국정을 이끌게 한다는 방안이다.

또 인수.인계위 등 권력이동 관리기구는 권한과 모양새를 새롭게 할 작정이다.

당선자가 미국.일본으로부터 경제구난 (救難) 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정상급 외교' 를 펴는 방안도 마련될 게 확실하다.

IMF측도 당선자와의 직접 대화를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경제쪽의 실질적 인사.정책의 관리운영은 당선자가 맡고, 金대통령은 이를 뒷받침하는 2원적 국정운영이 이뤄지는 것이다.

물론 경제외의 분야도 당선자의 의지가 강하게 투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차기 정부가 사실상 20일께 조기 출범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위기로 인한 새로운 '국정 실험' 이다.

청와대는 조기 퇴진론만큼은 부정적이다.

또다른 관계자는 "金대통령이 임기 (내년 2월25일) 전에 그만두면 헌정중단 사태가 생긴다" 고 지적했다.

그러나 주도권을 쥘 당선자쪽이 총리를 포함한 전면적 '조각 (組閣)' 을 요구할 경우 청와대가 이를 거부하기가 난감하다.

나라를 거덜낸 지금의 청와대가 임기조항을 들어 '통치권 수호' 에만 집착한다는 인상을 주면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분적 권한 이양으로 국가 위기 사태를 타개하기 어렵다고 당선자측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청와대는 밀릴 수밖에 없다.

결국 당선자가 국정 전반을 인수,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상황까지 갈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박보균.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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