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소유구조 개편 추진 배경…대주주 경영권 실질 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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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제통화기금 (IMF) 자금지원 여파가 그동안 난공불락 (難攻不落) 으로 남아있던 은행 소유구조의 벽을 허물게 될 전망이다.

그동안 시중은행의 소유구조와 관련한 정부방침은 일관되게 '산업자본 (재벌) 과 금융자본을 분리한다' 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임창열 (林昌烈) 부총리가 12일 관훈클럽 발언을 통해 이처럼 해묵은 정책기조를 바꿀 것을 시사한 배경은 IMF협상 이후의 상황변화와 직결돼 있다.

재정경제원은 IMF와의 협상과정에서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합작은행이나 현지법인 설립을 내년중에 허용키로 합의해줬다.

이같은 합의는 합작은행의 외국인 지분이 25~50%까지 허용되는데 비해 기존 시중은행의 대주주 1인당 의결권은 4%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역차별' 시비를 야기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내부적으로 내년 1월 속개될 IMF와의 협상에서 국내 은행의 1인당 지분한도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방안을 협의할 것을 검토중이었다.

그러나 외국 정부나 국제금융기구들이 한국의 금융구조조정, 특히 부실 시중은행들의 정리를 강력히 요구해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특히 국제결제은행 (BIS) 의 자기자본비율 8% 맞추기가 초미의 과제로 제시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은행들이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 무자비하게 신규대출을 중단하고 기존대출은 거둬들이면서 기업 도산이 속출하고 금융시장이 마비되는 악순환이 빚어졌다.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제일.서울은행에 정부보유 공기업주식 등을 현물출자키로 하는 한편 나머지 은행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 조치에 대해 국제 금융가는 '한국정부가 부실은행들을 전부 끌어안고 가려고 한다' 는 비판에 직면했고, 이는 결국 부실정리에 대한 정부의 박약한 의지와 결부돼 신규차입.상환연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정부의 현물출자 방식보다 어차피 '역차별' 시비가 있는 은행의 소유구조를 뜯어고치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남은 과제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5대 재벌의 은행 소유를 허용할 것이냐는 점. 이들 외에 실질적으로 시중은행을 소유, 경영할 능력이 있는 기업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나 재벌의 금융지배에 대한 반대론도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는 경우에 반드시 제기되는 '사금고 (私金庫) 화' 방지 문제다.

이를 막기 위한 효율적인 금융감독체제 역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IMF 지원 이후 기존의 기업소유구조 개편과 금융감독체계 정비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 문제는 어차피 큰 걸림돌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林부총리가 이날 토론회에서 "신한.하나 등 주인이 있는 은행의 경영실적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는 표현까지 사용한 것으로 볼 때 해묵은 '은행 주인 찾아주기' 의 실현이 시간문제로 다가서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손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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