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민주주의가 뒤로 가선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10월 5일 새벽. 파리 시청 앞에 모인 군중은 국왕이 있는 베르사유궁으로 가기로 결의했다. 군중은 오전 11시 무렵에 행진을 시작했다. 수가 6000~7000명에 이르렀다. 놀랍게도 대다수가 부녀자였다. 오후 들어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비에 흠뻑 젖은 군중은 오후 4시가 넘어 베르사유에 도착했다. 국왕은 국면이 기울었다고 느꼈는지 군중 대표를 만나 봉건제 폐기 법안에 서명하고 인권선언도 재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시위대는 10월 6일 아침이 밝아오자 궁정으로 쳐들어갔다. 결국 왕권은 무너지고 자유주의 시대가 열렸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 뒤 자유사회에서 인권선언의 내용은 헌법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제헌국회에서 헌법을 제정할 때부터 인권선언의 정신은 헌법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1987년에 개정한 우리 헌법의 전문에 들어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것도 인권선언의 정신과 궤를 같이한다. 제2장의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일련의 조문도 따지고 보면 인권선언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구체화한 것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에서 인권 조항은 하나의 구두선(口頭禪)에 지나지 않았다. 자유당 시절에는 반공이라는 절대명제에 밀려 사문(死文)이 되고 말았다면, 군부독재 시절에는 개발이라는 지상과제에 치어 하나의 사치스러운 상징(象徵)으로 밀려났다. 자유진영임을 표방하면서도 자유주의의 핵심인 인권은 도외시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과정을 거쳐서라도 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정착한 일이다.

10년의 야당시대를 접고 보수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은 지도 1년이 더 지났다. 이 정부가 들어설 무렵에 여권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유행하자 신자유주의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조차 어느 면에서는 안도했다. 보수주의자들이 반공이니 효율성이니 하는 것을 내세워 더 이상 자유주의의 기본 가정(假定)을 훼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을 신자유주의 담론 자체가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우선적 목표는 앤드루 헤이우드의 주장을 따르자면 ‘국가의 영역을 후퇴시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현대사회에서 개인과 국가의 관계가 전도됐다고 본다. 그들은 시민생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국가로 하여금 시민을 위축시키고 지배하게 했으며, 시민의 자유와 자존심을 빼앗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폭력이나 강압보다는 조정이나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명분보다는 실용주의를 선호한다. 이명박 정부가 여러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이런 신자유주의 정신을 구현한다면 이 정부 5년 동안 우리 정치사에 의미 있는 진전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내다보았다.

그러나 그런 낙관론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요즘 사회적으로 퍼져 가고 있다. 별로 대드는 세력도 없는데 여권에서는 공권력의 권위를 확립하는 것이 마치 중요한 현안인 것처럼 떠들어댄다. 국정원이나 검찰, 경찰과 같은 억압기구의 위세를 강화하더니, 그와 반대로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폭 축소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것도 법이 아닌, 행정부의 직제령을 고쳐 인권위원회의 권한도 사람도 예산도 줄이겠다니 이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럼 신자유주의조차 또 구두선인가? 경기(景氣)야 앞으로 가다가 때로는 뒤로 가기도 하는 법이지만 민주주의가 뒤로 가서는 안 된다.

김민환 고려대 교수·언론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