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실물경제 현장]우량기업도 돈줄 막혀 하루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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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초우량 대기업들의 기업어음 (CP).회사채도 할인과 발행이 전혀 안되는 등 기업 자금난이 최악에 달하고 있다.

특히 수출입 관련 신용장 개설과 네고마저 사실상 중단되고 있는데다 대기업 발행 진성어음조차 할인이 안돼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경영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 대기업도 하루살이 = 초우량기업인 P사는 한달 평균 물품대금으로 8백억원 규모의 어음을 발행했으나 이 어음이 할인되지 않고 있으며, H.S사등 대기업 등으로부터 받은 어음도 은행에서 제대로 할인이 안돼 자금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포철은 현금판매를 통해 들어온 돈으로 운영자금을 돌리는 자급자족 형태의 자금운영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그룹의 한 계열사 관계자는 "남아 있는 거래은행의 당좌차월 한도를 가지고 버티고 있으나 연말 이후의 자금조달은 안심하지 못하는 상황" 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 재무팀장은 "시설투자 차입금 상환과 운영자금은 당좌차월로 메우고 있으나 회사채.CP 발행이 사실상 막힌 것이 큰 문제" 라며 "은행들은 기업의 생존은 안중에도 없는 것 아니냐" 고 지적했다.

대우그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근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일부 국제 신용평가회사가 신용등급을 낮추는 바람에 CP 발행에 애를 먹고 있다.

계열사가 발행한 CP에 외국계 은행의 지급보증서를 붙이지 않는 이상 이를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제2금융권이 없는 실정이다.

◇ 수출입 활동 마비 = 수출입 관련 금융들이 거의 중단상태에 이르면서 수출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수출환어음 할인은 거의 전면 중단됐고 보통 신용장도 선별적으로 개설해주는 바람에 수출업체들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서울강남구삼성동의 K섬유수출업체는 수출환어음중 기한부 수출환어음인 DA나 유전스 할인은 전면 중단돼 수출한 제품을 만드는데 들어간 비용을 기한이 돌아올 때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형편이다.

이 회사는 "한국은행이 수출환어음을 담보로 은행들이 일반대출할 수 있게 조치했으나 은행 일선창구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고 주장했다.

특히 이 회사는 내국 신용장 개설마저 안돼 협력업체로부터의 원.부자재 공급도 못받고 있으며 지난 10일엔 중국의 모은행이 수입 신용장 개설을 거부하는 바람에 5만달러어치의 수출을 포기했다.

한 대그룹 자금부장은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 (BIS) 의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15일부터 신용장 네고를 전면중단하고 25일께부터는 내국 신용장 거래를 전면 중단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고 걱정했다.

고윤희·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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