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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외환시장…150억불 연내에 갚아야하는데 80억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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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내 외환시장에선 지난 3일 합의한 IMF의 구제금융 지원일정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아무리 따져봐도 연내에 갚아야할 외화부채에 비해 올해 들여오기로 한 IMF지원자금의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외환시장에선 연말까지 당장 갚아야할 외화부채 규모를 1백50억달러로 추정한다.

이에 비해 외환당국이 쓸 수 있는 가용 (可用) 외화는 다 합쳐봐야 80억달러에도 못미친다.

한국은행은 아직 지난 11월말 현재 외환보유액 통계를 내놓고 있지 않지만 월스트리트 저널지가 입수한 IMF자료에 따르면 지난 12월2일 현재 가용 외환보유액은 60억달러에 불과하다.

이달중 IMF에서 들여올 지원금액은 다 합쳐야 90억달러를 조금 넘는다.

여기에 아시아개발은행 (ADB) 과 세계은행 (IBRD) 이 각각 연내에 20억달러씩을 지원키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IMF와의 합의조건에 따라 연말까지 가용 외환보유액을 1백12억달러로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금액을 빼고 나면 사실상 대외지급에 쓸 수 있는 외환보유액은 78억5천만달러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돈을 추가로 마련하지 못하는한 IMF와의 외환보유액 적립 약속을 못지키거나, 또는 대외채무상환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수출대금으로 받은 돈을 '만일의 사태' 에 대비, 장외 (場外)에서 굴리고 있다.

사정이 이렇고 보면 달러에 대한 원화환율이 4일째 하루변동 상한선까지 오르면서 외환시장이 마비상태에 빠진 것도 실은 처음부터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정부나 한은도 현재의 외환보유액을 갖고는 연말까지 버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물론 외환시장 참가자들도 사정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고요. "

한 시중은행 국제부장의 이 말은 정부의 대책없는 외환수급정책의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한 외환딜러는 "처음부터 지고들어가는 게임이었다" 고 말한다.

현재 동원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으로는 연말까지 돌아오는 단기부채를 막기도 벅찬데 외환당국이 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방어하고 말고 할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외환당국은 매일 돌아오는 결제금액을 장외 (場外)에서 은행에 대주고는 있으나 이것마저 언제 바닥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외환딜러들은 정부가 연내에 외화를 추가로 들여올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한 대외채무불이행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당초 정부는 IMF와의 협상과정에서 IMF지원 이후 외국투자가들의 평가가 달라지고 민간금융기관들의 해외차입이 어느정도 이뤄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산업은행이 이번주중 발행하려던 20억달러의 양키본드는 성사가 불투명하다.

1백% 정부출자기관인 산업은행이 이 정도면 나머지 금융기관들은 아예 해외차입의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여기에다 최근 한국정부의 대외 단기채무 변제능력을 의심받으면서 국내은행에 초단기 외화자금을 빌려줬던 일본계 은행들이 일제히 자금회수에 나서고 있어 갚아야할 외환규모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다른 시중은행의 외환관계자는 "정부가 부족자금을 해소할 명확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한 국가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려가지 않을 수 없다" 고 하소연했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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