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아들의 가장 구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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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 역경을 맞을 때마다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밝혀왔다. 자서전인 『여보, 나 좀 도와 줘』에 구체적으로 적어놨다. 부인인 권양숙 여사에 대해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지”라고 평가했다. 또 장남인 건호씨를 “생김새도, 목소리도, 심지어 한 일(一)자 주름살까지도 나를 닮았다”며 좋아했다.

노 전 대통령을 향해 수사망이 좁혀지는 요즘도 권 여사와 건호씨는 검찰의 입장과 달리 ‘가장(家長) 구하기’에 나서는 듯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인 자격으로 10시간 넘는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선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다.

건호씨는 사촌매제인 연철호씨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투자 받는 과정에 부친이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2월 연씨와 함께 베트남에서 박 회장을 만난 것도 “해외에서 성공한 사업가를 배우기 위해서”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건호씨가 500만 달러와 연관된 사실이 확인될 경우 검찰은 돈의 성격을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준 뇌물로 판단할 정황으로 삼을 수 있다. 연씨도 투자 계약서 등 서류를 제출하면서 건호씨를 지원 사격했다. 건호씨는 특히 2007년 7월 미국에서 부모와 만나 100만 달러를 건네받지 않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권 여사는 “100만 달러와 3억원을 내가 받았다. 이 돈은 빚을 갚는 데 썼다”고 주장했다. “남편 모르게 내가 받았다”며 뇌물수수 의혹을 자기 선에서 끊은 것이다.

두 사람의 진술은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의 주장이 신빙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권 여사는 검찰 소환 때 차용증 등 주장을 입증할 서류를 제출하지 못했다. “누구에게 돈을 빌렸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대해선 “빌려준 사람에게 피해가 간다”고 답변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사용처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권 여사가 진술의 신빙성을 위해서는 용처를 밝혀주는 게 낫다”고 말했다. 권 여사가 용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경우 100만 달러와 3억원이 노 전 대통령에게 간 뇌물이라고 판단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은 특히 건호씨와 연씨의 진술이 상이한 부분을 발견했다고 한다. 통화내역 조회를 통해 두 사람이 소환에 앞서 진술을 맞췄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이철재·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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