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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도 감동 먹었다, 오바마 ‘리셋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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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리셋 외교’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리셋 외교’는 미국이 그동안 대립각을 세웠던 나라들과의 적대 관계를 원점에서 다시 정립한다는 것을 뜻한다. 조 바이든 부통령 등 오바마 행정부 관리들이 써온 말이다. 오바마 정부 대외 정책의 기조가 된 이러한 변화에 러시아를 비롯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사사건건 미국과 마찰을 일으켰던 이란·베네수엘라·쿠바·탈레반 등도 화답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열매를 맺기까지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남미 국가의 경우 이민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가 얽혀 있어 미국의 관계 개선 노력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오바마에게 화답하는 이란=오바마 대통령은 1월 20일 취임식에서 적대국들에 화해의 뜻을 밝혔다. 그는 “미국은 상호 이해와 상호 존중에 기반한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며 “당신들이 주먹을 펴고자 한다면 협조의 손을 내밀겠다”고 말했다. 바이든 부통령도 2월 7일 미국 새 행정부의 주요 외교 정책을 대외적으로 처음 밝히는 자리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리셋 버튼을 누르기 원하며, 이란 정부와도 대화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반응이 나오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오바마와 서신 교환 및 전화 통화 등으로 국제 현안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었음을 밝혔다. 이러한 분위기는 1일 두 정상이 회담을 열고 핵무기 감축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란의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8, 9일 잇따라 미국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선언했다. 아마디네자드는 8일 “이란은 ‘정직한’ 버락 오바마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9일에도 “상호 존중과 정의에 근거한 회담이라면 서방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때마침 기회도 좋다는 게 이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란 대선이 6월 12일로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고립되는 것을 원치 않는 이란 국민이 아마디네자드에게 오바마의 대화 메시지에 화답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어 재선을 노리는 아마디네자드로선 이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분석했다.


◆차베스·카스트로 화해 기대=남미의 ‘반미 기수’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기대를 표시했다. 4일 미국 폭스뉴스 인터넷판에 따르면 차베스 대통령은 “17~19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리는 미주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를 ‘리셋’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차베스는 “그것이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이 되길 바란다”며 “오바마가 베네수엘라와 비슷한 조치를 취하려 한다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차베스의 화해 메시지에 맞춰 베네수엘라 정부는 9일 미 해안경비대와 합동작전을 펼쳐 대규모 마약조직을 적발한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전 국가평의회 의장도 7일 미국 의원 3명과 역사적인 회동을 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오바마 대통령을 도울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와킬 아메드 무타와킬 전 탈레반 외무장관도 6일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은 (미국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미국인들이 무슬림과 신뢰 분위기만 조성한다면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사라진 부시 용어들=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만들어진 ‘전투성 신조어’들은 사라지고 있다. 우선 부시가 이란·이라크·북한을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정권교체의 대상으로 지목하면서 사용했던 ‘악의 축(axis of evil)’이란 용어는 폐기됐다.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도 ‘해외 긴급 작전(overseas contingency operation)’으로 교체됐다. ‘적 전투원(enemy combatant)’도 부시 행정부의 인권침해를 상징하는 용어로 부각되면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인 탈레반과 알카에다 등의 조직원이나 이들 단체를 지원하는 사람을 ‘적 전투원’이라고 부르며 재판 없이 무기한 구금도 했다.

박경덕·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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