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0인회 부산 총회] “녹색성장은 동북아의 미래 … 그린펀드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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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너지 분과 토의 내용

환경·에너지 분과는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동북아 녹색성장 구상(그린 그로스 이니셔티브)’ 추진을 각국 정부에 제안하기로 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물론 장기적인 녹색성장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연구기지(플랫폼)를 꾸미자는 취지다. 실행을 뒷받침할 가칭 동북아 그린펀드의 조성도 각국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한·중·일 30인회 4차 회의 이틀째인 13일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동북아 경제 협력 방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부산=송봉근 기자]

사회를 맡은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은 “환경·에너지 문제를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차원을 넘어 동북아 세 나라의 미래성장 동력으로 삼자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이홍구 전 총리는 “환경의 중요성에 관해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이제는 이를 구체화해 행동에 옮길 때”라며 “새 구상을 3국 환경장관 회의를 거쳐 정상회담에 제안하자”고 말했다.

녹색성장 구상의 시행은 새 조직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 산·학·연 연구기관의 역량을 살리자는 데 참석자들의 의견이 모였다.

고미야마 히로시 전 도쿄대 총장은 “일본에는 고령화 등 여러 복합 문제에 대한 연구 네트워크들을 통합하는 경우가 많다”며 “새로 생길 센터도 이런 역할을 염두에 두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기지 아이디어는 중국 측에서 나왔다. 웨이푸성 중국 환경감시측정본부 주임은 “특히 정책 분야에서 세 나라의 공동 연구기지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여기서 각국 연구진의 다양한 경험과 정보를 모아 각국 정부에 정책적으로 제안하면 된다”고 말했다.

니와 우이치로 이토추상사 회장은 “주택·빌딩의 열효율과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문제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한·중·일 모두 바다로 둘러싸이거나 긴 해안선이 있는데 육지뿐 아니라 바다의 사막화도 심각하다”며 “이에 대해서는 반드시 세 나라의 공동연구와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먼 장래를 위한 신재생에너지도 중요하지만 당장 폭증하는 에너지 수요에 가장 친환경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고속 증식로 등 차세대 원자력 기술에 대해 세 나라가 공동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 나라 문화 DNA 비슷” 번역서 소개 도서전 눈길

제4차 ‘한·중·일 30인회’ 본회의 막간에 일본과 중국의 번역서를 모은 ‘미니 도서전’이 열려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날 전시된 책들은 국내 독자들에게 인기를 모았던 『자치통감』 『중국 개혁 30년』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는가』 『끈질긴 경영』 등 60여 종.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소개된 중·일 두 나라 번역서는 모두 5000여 종 1600만여 권. 중국 번역서는 역사·문학·사회과학 분야가 많았고, 일본 번역서는 아동·만화·문학·사회과학 등 각 분야에 걸쳐 다양했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세 나라의 전통과 정서, 다시 말해 문화적 유전자에는 유사한 측면이 많다”며 “한 나라의 역사·문학·고전 베스트셀러가 다른 두 나라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고 말했다. 정훙예 전 중국 국제무역촉진위원회 회장은 “중국 역사 분야 책이 많이 보이는데 이는 3국이 역사적으로 밀접하게 관계를 맺어 왔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참석자들은 “한국의 번역 인력풀이 두터우냐”고 큰 관심을 보이면서 “번역서가 상호 이해를 넓히기 위한 출발점이 되는 만큼 한·중·일 3국의 소통 수준 업그레이드를 위해 더 많은 양서가 번역돼야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문화·교육 분과 토의 내용
“인문학 키워야 3국 네티즌 가까워져”

“세계는 글로벌화하면서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데 인터넷 기반의 사이버 세상에선 한·중·일이 더 멀어졌다. 대책이 시급하다.” 참석자들은 인터넷에서 오가는 상호 비방으로 인해 3국 젊은이 간 오해의 골이 더 깊어지는 현상을 한목소리로 우려했다. 신속 대응이 가능한 상설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에서부터 양식 있는 인터넷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인문학적 교양 교육의 확대 같은 근본 처방이 나오는 등 풍성한 해법이 논의됐다.

사회를 맡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인터넷은 특유의 익명성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풍문이 사실과 정보로 수용될 수 있는 위험성이 크다”며 “3국의 책임 있는 언론이 나서 오류를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이를 위해 중앙일보·신화통신·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넷판에 관련 코너를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지바오청 중국 인민대 총장은 “미디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정확한 정보가 생명”이라며 “잘못된 정보를 걸러주는 웹사이트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넷 정화에 앞서 책임 있는 신문·방송·통신의 건전한 언론 활동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는 의견도 있었다. 후웨이 상하이 교통대 국제공공사무학원장은 “젊은이들의 일상 생활은 인터넷과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밀착돼 있어 기성세대도 적극적으로 인터넷의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며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언론의 책임이 더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작가이기도 한 사카이야 다이치 일본 전 경제기획청 장관은 “한·중·일의 정보가 미국과 유럽의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의 유통 구조가 문제를 키운 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직접적인 정보 교류가 미흡해 상대에 대한 편견을 키우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3국 언론의 검증된 보도가 양적으로 확대되면 근거 없는 악의적 비방을 걸러낼 수 있는 자율 정화력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의에선 또 3국의 발전적인 미래를 위한 단기 처방이 아닌 근본적 접근이 비중 있게 논의됐다. 이 전 장관은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고, 용이 살아야 명천이듯이 인터넷도 양질의 콘텐트가 가치를 결정한다. 양식 있는 네티즌이 많아져야 한·중·일의 사이버 세계도 비전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명예교수인 김남조 시인은 “인터넷이 건전한 교류의 장이 되기 위해 3국 교육 현장에 인문학이 살아나야 하고 죽은 철학이 부활해야 한다”며 “한·중·일 젊은이들이 저급한 물질주의에 물들지 않고 건전한 감성을 바탕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인문학적 바탕을 키울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 지 총장과 사카이야 전 장관은 “내년 상하이 엑스포와 2012년 여수 엑스포를 3국 간 교류 확대의 신기원으로 삼을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유상철·한우덕(중앙일보중국연구소 기자)·김현기(도쿄특파원)·최지영·이승녕(경제부문 기자)·정용환(국제부문 기자)·김상진(사회부문 기자)·송봉근(영상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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