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 이것만은 고치자]2.호화 망년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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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시내 주요 호텔 예약부에는 요즘 '예약취소' 전화가 줄을 잇고 있다.

중구 롯데호텔의 경우 당초 15개 연회장의 12월 예약률이 90%를 웃돌았으나 지금은 60%수준으로 떨어졌다.

롯데 관계자는 "향우회.가족모임등의 예약이 많이 취소되고 있으며 기업체 송년모임도 예년의 절반 정도로 줄었다" 고 말했다.

대형 연회장 3개를 가진 플라자호텔도 예약취소가 잇따르자 1인당 1만원대의 조찬모임 상품으로 개발하는가 하면 24일 밤에는 '노마진 재즈디너쇼' 를 열 예정이다.

이런 사정은 강남 지역 유명 호텔이나 고급 음식점도 비슷하다.

경기가 어렵다던 지난해도 12월에는 예약률이 거의 1백%에 달했는데 올해는 70%를 채우기도 힘들다.

IMF (국제통화기금) 한파로 사회 분위기가 위축되면서 송년모임도 종전에 비해 한결 간소화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런 속에서도 일부의 '흥청망청 모임' 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6일 저녁 서울강남구 인터콘티넨털호텔 2층 대연회장 오키드룸에서는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와 휘황찬란한 얼음조각이 꾸면진 가운데 D고교 재경총동문회 송년모임이 열렸다.

2백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의 경비는 기본 식사비만도 1천여만원. 여기다 한병에 8천4백원 (세금 포함) 짜리 맥주등이 곁들여지면서 총비용은 1인당 10만원꼴인 2천여만원에 달했다.

동문회 관계자는 "눈치가 보였지만 오랜만에 동문들이 만나는 행사라 취소할 수 없었다" 고 말했다.

이 정도는 약과다.

힐튼호텔 파라오.릿츠칼톤 닉스&락스등 유명호텔 나이트클럽등에는 여전히 각종 모임이 줄을 잇는다.

양주 한병에 보통 30만원. 10명정도가 가면 최소한 1백만원이상 쥐어야 하지만 룸 확보전이 치열하다.

한 호텔 직원은 "10명 정도가 와서 5백만원 이상 쓰는 경우도 흔하다" 고 말했다.

저녁 9시가 넘으면 자리가 없어 일부 극성파들은 미리 '선발대' 를 보내 좌석을 확보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한다.

경제살리기범국민운동본부 유종성 (柳鍾星) 사무차장은 "나라경제가 총체적인 위기에 빠진 현 시점에 망년회등으로 흥청망청하는 것은 문제" 라고 지적했다.

서울YMCA의 서영경 (徐瑩鏡) 팀장은 "형식적인 연하장 보내기도 자제돼야 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그나마 다행은 알뜰 송년모임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여고 동창회는 당초 3천여만원을 들여 롯데호텔 대연회장을 빌리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지난 5일 모교 강당에서 1인당 4천원짜리 도시락으로 점심 송년회를 가졌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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