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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도]75.누아르영화(1)…불안·욕망 삭이는 '카타르시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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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누아르가 우리 곁에 돌아왔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는 최근호에서 90년대 말의 미국에 새로운 누아르 (네오 누아르) 바람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의상에서부터 음악.광고까지 곳곳에서 누아르가 하나의 생활양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장식용품 가게에서는 영화 '다이얼 M을 돌려라' 에 나왔던 검은 색 다이얼식 전화기가 인기품목이 되었고 캐멀사는 담배를 선전하면서 요부 (妖婦.팜므 파이탈) 를 등장시켰고 구치의 새로운 컬렉션은 40년대식 원숭이털 쟈켓으로 누아르 스타일을 살렸다.

또 가수 칼리 사이먼은 아예 '필름 누아르' 라는 제목으로 영화 주제가를 모은 CD를 내놓았으며 제임스 케인의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울린다' 와 짐 톤슨의 '내 안의 킬러' 같은 걸작 누아르 소설들이 세트로 출간되고 있다고 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누아르' 는 '검다' 는 뜻의 프랑스어로서 미국 범죄소설을 번역한 '누아르 시리즈' 에서 따왔다.

프랑스 평론가들이 2차대전을 전후에 할리우드에서 한 경향을 이루었던 어둡고 냉소적인 범죄영화에 대해 '필름 누아르' 라고 붙였던 것이다.

앞의 뉴스위크 기사가 누아르 붐을 다루게 된 계기도 'LA비밀서류' 가 미국에서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대단한 찬사를 얻은 데 따른 것이었다.

'요람을 흔드는 손' 을 만든 커티스 핸슨감독의 'LA비밀서류' 는 많은 이들이 올해 아카데미상을 휩쓰리라고 점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난번 칸영화제에도 출품되었던 이 영화는 고전적인 누아르영화의 형식과 스타일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사립탐정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고 요부와 창녀가 등장하며 결말은 예기치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논자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40년대 초에 시작해 50년대 중반에 끝난 '고전적인 누아르영화' 는 레이먼드 챈들러와 사무엘 대실 해밋, 제임스 케인같은 작가들이 쓴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서 이야기의 재료를 얻고 독일의 표현주의에서 시각적 스타일을 빌어왔다.

하드보일드 소설은 주로 사랑 - 배신 - 살인의 삼각관계를 통한 범죄를 다루면서 사건의 해결사로 사립탐정을 등장시킨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고독한 '도시 속의 카우보이' 인 사립탐정은 빈민가에서 부유층까지 사회의 구석구석으로 관객을 인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도시의 이면에 감춰진 추악한 세계가 들춰졌다.

이 시기의 누아르영화에는 2차대전에 참전한 인물들이 거의 빠지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여성주인공은 '독거미' 같은 여인으로 묘사되었다.

남자들이 유럽에서 전쟁에 시달리는 동안 여성들은 사회적 활동을 경험하면서 주부에서 캐리어우먼이 되었다.

따라서 남성들은 그런 여성들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그러한 두려움은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여성' 이라는 형태로 성격화 되어 나타났다.

한편 이같이 선악이 분명하고 불안정한 세계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명암이 확연하고 길게 그림자가 지며 화면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지는 표현주의적인 양식이 적합했던 것이다.

50년대 중반 냉전의 시작과 핵가족의 확산, 도시 교외로 빠져나가는 인구가 늘면서 본질적으로 '사회비판적' 인 누아르영화는 쇠퇴하게 된다.

그래서 폴 슈레이더감독 같은 이들은 그 시기 이후에는 누아르영화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베트남전쟁 패전을 전후에 누아르가 다시 살아났다고 본다.

특히 마틴 스코세지감독의 73년도 작품 '비열한 거리' 는 자신의 말대로 '컬러로 누아르영화를 찍으려 시도했던 작품' 이다.

고전기 누아르영화에 경도되었던 그는 누아르에 대한 대한 존경심과 함께 영화 속에 '현실' 을 담으려했다.

즉 범죄와 폭력의 세계를 적나라한 모습 그대로 영화에 담았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택시 드라이버' '좋은 친구들' 등 이후의 작품들에도 관통한다.

확실히 컬러로 찍은 누아르영화는 흑백영화가 가진 도식적이고 추상적인 특성들을 보완해 보다 현실감을 부여해 주었다.

게다가 검열의 완화로 폭력과 성에 대한 묘사가 더욱 생생해졌다.

아무튼 꺼질 듯 꺼질 듯 하면서도 누아르영화가 주기적으로 소생하는 데는 그 나름의 정치.사회적인 이유가 있다.

90년대의 누아르의 부활에 대해서는, 다소 기계적이긴 하지만 세기말에 처한 시대의 불안을 반영한다는 것이 통상적인 해석이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 바깥에서 정통적인 누아르영화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나타나더라도 대개는 변형된 형태이기 십상이다.

한 예로 '영웅본색' 이나 '첩혈쌍웅' 같은 우위썬 (吳宇森) 감독의 영화들에 붙여진 '홍콩누아르' 는 할리우드 누아르에 대한 패러디 내지는 변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홍콩영화와 관련해서 왕자웨이 (王家衛) 감독의 '중경삼림' 이나 '타락천사' 를 누아르로 보는 시각도 있다.

'소나티네' 같은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北野 武) 감독이 만든 일련의 영화들도 변형된 누아르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전통이 부재한 데다 갱영화나 표현주의영화 같은 장르적인 토양이 약한 한국에서 누아르영화를 발견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영화평론가 김정룡씨는 50년대말에 나온 신상옥감독, 최은희주연의 '지옥화' 나 60년대 김수용감독의 '맨발의 청춘' 에서 누아르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지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김씨는 "누아르영화는 기본적으로 영화의 스타일이 농익었을 때 태어나는 것이며 오슨 웰스의 작품들에서 보듯이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탐구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형식과 스타일의 기반이 허약한 한국영화에서는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할 만한 누아르 작품이 없다" 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김성수감독의 단편영화 ' 비명도시' 가 누아르의 관습에 비교적 가까이 다가간 작품이라고 보았다.

주인공이 느닷없이 사건에 말려들거나 영화가 전반적으로 암조 (暗調) 를 띠면서 사각 앵글이 많은 점에서 누아르적인 '표정' 이 있다고 본 것이다.

평 론가 정성일씨는 김씨와는 달리 '지옥화' 는 기형화된 멜로 드라마일 뿐이라며 90년대 이전 영화들에서 누아르라고 칭할만한 작품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아르가 '도시문명에 대한 사유' 라는 점에서 최근 젊은 감독들의 일부 영화를 누아르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글로벌한 모습을 띠어가면서 도시에 대한 탐색이 최근 작품들에서 많이 엿보인다며 그런 점에서 홍상수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에서 누아르의 징후를 읽을 수 있겠다" 고 말했다.

'돼지가 우물에…' 에서 여성주인공들은 남성주인공들을 파멸로 이끈다는 점에서 '요부' 의 성격이 짙으며 소외되고 뒤틀린 도시인들의 분위기도 감지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는 관습이나 아이콘에서 할리우드식 누아르를 따라 갈 수 없는 한국영화는 결국 누아르영화가 가진 정신을 흡수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미국에서 누아르가 부활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아직 한국에서는 딱히 누아르라고 할 만한 전통이나 영화군 (郡) 조차 형성돼 있지 않다.

그러나 사회심리적인 불안과 물질적 욕망의 충족에 대한 갈망이 일상화하면서 '누아르적인' 영화들이 탄생할 씨앗은 배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누아르영화는 도시문명에 상존하고 있는 범죄와 불안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머리 속 생각들을 스크린을 통해 경험토록 함으로써 일종의 안전판 구실을 한다.

누아르영화가 현실에 닿아 있으면서도 인간들의 무의식과 환상에 작용한다고 얘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젊은 감독들을 중심으로 싹을 보이기 시작한 누아르영화는 멜로물이나 액션영화 위주의 한국영화가 가진 장르적인 편협성을 벗어나게 해 줄 것이다.

또 '현실' 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꿈과 환상' 을 담아내지도 못하는 얄팍하고 경박한 한국영화에 깊이를 줄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누아르영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폭되고 확산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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