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지원이후 태국·인도네시아]4.고물가 주름살 인도네시아 국민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50년만에 처음 당하는 가뭄과 국토의 상당 부분을 초토화한 산불 (연무) , 설상가상으로 덮친 금융위기로 올해 인도네시아 경제는 건국 이래 최악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2일 방콕발 자카르타행 비행기 안에서 만난 인도네시아대 정치학과 3년생 에도 삼수 (22) 는 "최근 한.일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국제통화기금 (IMF) 긴급지원 결정 뒤 잠시 안정됐던 경제가 다시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고 걱정했다.

태국에 이어 지난 10월30일 IMF에 긴급지원을 요청한 인도네시아의 경제상황은 한마디로 장마철 먹구름 같은 형국이다.

3일 오전8시 자카르타 시내 피사르 밍구가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 '고로' . 이른 아침부터 식료품을 사기 위해 가게문을 열기도 전에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지난달부터 쌀을 비롯한 각종 생필품가격이 치솟자 물가폭등을 우려한 시민들이 식료품 사재기에 나선 것이다.

주부 디안 안그 라이니 (23) 는 "가뭄으로 쌀 생산량이 줄어든데다 태국등 인근 국가에서 수입하는 쌀가격이 환율 상승으로 엄청나게 올라 지난달 ℓ당 9백루피아였던 쌀 한 부대가 현재 1천2백루피아로 무려 30%나 올랐다" 며 "식용유.채소.과일등도 평균 20~30%씩 올랐다" 고 말했다.

약 2억 인구에 1인당 국민소득이 1천달러에 불과한 인도네시아에서 생필품 가격 폭등은 정치불안으로 이어질 소지마저 낳고 있다.

급기야 지난 3일 수하르토 대통령이 경제각료들을 이끌고 자카르타 시내 쌀시장을 직접 방문, 시민들에게 쌀 사재기 금지를 촉구하는 한편 "생필품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유통업자들을 엄벌에 처하겠다" 고 경고할 정도로 사정은 급박하다.

지난 연초 달러당 2천3백루피아선이었던 통화가치가 무려 70%이상 폭락하자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자동차 가격은 이미 50%나 올랐으며 가전제품.가구.의류등 수입품 가격도 폭등, 백화점의 수입제품 코너 가운데 아예 문을 닫는 곳도 적지 않다.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인도네시아의 부자 가운데 엄청난 재산을 날리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구당가람 그룹의 라크만 하림 회장은 최근 소유지분 시가가 두달새 25억달러나 줄었고 수하르토 대통령의 아들이며 비만타라시트라 그룹 회장인 밤방 트리하트모조도 지난달 이후 2억6천만달러를 날렸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지난달 정부가 16개 부실 은행을 전격 폐쇄하고 1인당 2천만루피아까지만 예금 인출을 허용하자 지레 겁먹은 예금주들이 돈을 찾기 위해 은행으로 몰려들었다.

이 때문에 자카르타 시내의 대부분 은행이 영업을 제대로 못하고 경찰이 출동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부가 통화가치를 지키기 위해 루피아화 발행을 잠정 중지하고 은행 대출이자율을 연 15%대에서 30%대로 무려 두 배 이상 높인 결과 내수경기 위축으로 영업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운전자금을 구하지 못해 줄줄이 도산하고 있다.

이와 달리 대기업들은 긴축경제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도산 기업이 나오지 않는등 비교적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들도 판매 급감으로 고통을 받기는 마찬가지여서 내부적으로 인원감축.사업축소등 피나는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자카르타 = 임봉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