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23년 만에 파산 위기 “누구 땅 살 사람 없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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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07면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에 위치한 세종연구소. 10년간 지속된 재정난으로 파산 위기에 처했다. 오른쪽은 연구소가 임대료를 받고 있는 골프연습장. 신동연 기자

“누구 땅 살 사람 없습니까.” 1988년 10월 5공 비리 청산 청문회로 떠들썩했던 일해 연구소의 후신 세종연구소가 설립 23년 만에 ‘존폐 기로’에 처했다. 극심한 재정난으로 종자돈 잠식 상황까지 내몰린 것이다.

세종연구소의 기구한 운명

세종연구소의 모체인 세종재단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대왕판교로 400번지 일대 재단 소유지 1만8000평 가운데 1만 평을 매각하는 방안을 자구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 후 거처할 영빈관까지 지어두었던 이곳은 유명 풍수지리학자들이 청와대 이전 터로 추천한 명당터. 하지만 전반적인 경기불황 탓에 땅을 사겠다고 나서는 이도 없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공노명(77·사진) 이사장은 “현 적자상태가 지속될 경우 5년 뒤엔 세종재단의 기본자금 395억원을 잠식해 파산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공익 재단이 기본 자산을 잠식하는 경우 파산 절차를 밟게 되고, 세종재단의 경우에는 소관 부처인 외교통상부가 처분할 수 있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기금 모금을 할 계획도 있지만, 우선은 땅을 매각해 급한 불을 꺼야 할 만큼 사정이 어렵다는 얘기다.

주로 기금의 이자로 지탱해 온 세종연구소는 2000년 이후 재정난을 겪기 시작했다고 한다. 재단 설립 이후 고금리 덕에 수백억원에 이르는 금융 이자를 축적했던 재단은 종자돈 외에 현재 220억원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배태수 세종재단 감사는 “아웅산테러 유족에 대한 생활자금(가구당 매달 300만원 정도)과 장학금 지원, 세종연구소 운영, 건물 관리 등에 연간 50억원이 소요되지만 수익은 2~3%대의 이자와 골프장 임대료 수익(5억원)밖에 없다”고 했다. 2000년 이후 수년 전까지 적자가 연간 30억원이었다가 최근 15억~18억원으로 줄었지만 이 정도 수입으론 버티기 힘들다.

연구소 입구에 있는 골프장과 골프연습장은 임동원 이사장 재임 시절인 2006년 재단 측이 민간업자에 땅을 임대한 것으로, “연구소가 할 일이 아니다”는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재단 측은 현 연구소 건물을 포함한 1만 평을 팔면 800억원 정도가 확보돼, 새 연구소를 짓더라도 모두 1200억원 정도의 견고한 재정을 갖출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배 감사는 “소관 부처인 외교통상부에 땅 매각 승인을 이전에도 두 차례 요청했지만 거부됐고, 공 이사장 취임 이후 승인을 얻었다”고 했다.

세종연구소의 운명은 태생부터 험난했다. 대한민국의 분단 비극과 80년대 굴절된 정치 문화를 고스란히 안았다.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 당시 발생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17명이 희생됐는데, 희생자 유족을 돌보자는 차원에서 재단 설립 논의가 시작됐다. 사건 발생 뒤 급거 귀국길에 오른 전 대통령과 수행단 일행이 서울로 오는 KAL 특별기 속에서 얘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의 호, 일해(日海)를 딴 재단의 기금과 자산을 출연하는 과정에서 강제성이 확인됐고, 전 대통령 퇴임 후 정치 활동을 위한 저의가 깔려있다는 비판을 받으며 5공 비리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모금액 598억원 가운데 상당액과 정주영 회장이 기부한 20만 평 중 1만8000평을 제외한 땅이 비리 청산 과정에서 국고에 환수되기도 했다.

“주인 없는 조직의 비애”
막대한 자금으로 출발한 세종연구소가 왜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 연구소 관계자는 “20여 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인사들이 연구소로 와서 코드에 맞는 자기 사람들을 심어놓고 힘만 심어준 채 대책없이 나간 게 화근”이라고 말한다. 연구직도 일반 행정직도 2000년 이후 신규채용은 없었다. 재단 측은 “최근 1년 계약의 객원 연구원 4명을 충원했다”고 말했다. 심각한 동맥경화 상태다. 조직 개혁도 없었다. 한때 26명에 이르렀던 연구위원은 16명. 전원이 수석연구위원이다.

설립 당시 행정직원은 100여 명. 연구소 치곤 너무 많은 수였다. 20년간 자연 감소해 40여 명으로 줄었다. 이들은 노조를 조직했고 현재 민주노총 소속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강성 노조는 아니고, 연구소에 힘을 행사하는 일은 없다”면서도 “보통 연구직들이 누리는 안식년 제도를 쓰고 있는데, 외부에서 보면 황당하다고 여길 일”이라고 말했다.

세종연구소는 김대중 정부 이후 10년간 외교안보 분야 실세들을 배출해냈다. 이 분야에는 연구소 인맥이 얽혀 있어 ‘세종 커넥션’이란 말도 나왔다. 보수 진영은 “연구소가 대북 포용코드 위주 인사로 가득찼다” “좌파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세종에서 배출한 통일부 장관은 3명이나 된다. 김대중 정권에서 외교안보통일 특보와 통일원 장관,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 전 이사장.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노무현 정권 초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막강한 힘을 과시했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그들이다. 백종천 전 대통령실 외교안보 정책실장과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 원장도 임동원·이종석 라인과 인연이 깊다. 노 대통령의 외교안보 가정교사 역할을 했던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2005년부터 세종재단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해 말 공노명 이사장과 올해 초 송대성 연구소장의 취임은 정권 교체 뒤에 이어진 연구소 탈색 과정의 하나다. 공 이사장은 “연구진의 성향이나 연구 결과물이 설립 취지에 어긋나는 쪽으로 편향돼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재정적인 안정 마련과 함께 연구소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송 소장도 “지난 10년 동안 좌파의 둥지란 지적도 받았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구가 우리 연구소의 장점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가치를 훼손하는 것까진 존중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연구진에게 하고 있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연구의 경쟁력 약화라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위원은 “과거 세종연구소의 연구물은 익명 처리해 외부 전문가에게 맡겨 심사를 받아왔다”면서 “백종천 소장 시절 외부심사 제도가 슬그머니 없어졌다”고 말했다. 연구 심사 폐지가 실력 약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는 “주인 없는 연구소의 비극”이라면서 “연구소가 경쟁력이 아니라 소장과의 친소관계로 운영됐다”고 주장했다.

“이번 정부 아무도 신경 안 써”
이사진의 땅 매각 움직임에 대해 연구소 내부에선 불안해 하면서도 “단순히 목숨을 유지하는 것 이상의 비전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관계자는 “민간재단이지만 역사적 의미로 볼 때 국민재단인 만큼 정부 차원의 해결책이 나왔으면 한다”면서 “그전엔 너무 개입해서 문제였는데 지금은 너무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뜻밖에 국회 차원의 움직임이 주목을 끈다. 박계동(사진) 사무총장은 “땅을 팔아 해결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라며 “연구소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수익구조를 안정적으로 창출하는 개혁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박 사무총장은 “일단은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를 모델 케이스로 연구하고 있다”면서 “행정·외교 분야의 석·박사 과정을 두고 최고 인재를 찾아내, 공무원으로 활용하면 현행 고시제도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행시나 외시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발상이다.

또 한국의 전자정부 시스템을 배우려는 외국의 수요가 많은데, 세종연구소가 이 수요를 해소할 수 있고 고위 공직자 및 광역·기초 자치단체장과 의원들의 연수 기능도 맡을 수 있다고 했다. 국회의 연수 예산도 있어 재정적으로 가능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그는 “세종연구소 발전방안에 대한 검토 작업이 끝나면 정부와 각계 의견을 취합해 올여름께 세종재단 이사회에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세종연구소는 세종재단의 이사회 의결로 연구소의 발전 방향을 새로 설정할 수도 있다. 현재 재계와 학계, 유족대표 등 13명이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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