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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04>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9호 16면

그 순간, 중세 기사가 투구와 갑옷을 벗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람한 체격의 타자가 마운드를 노려보며 한참 뜸을 들였는데, 상대 투수가 허탈하게 고의 볼넷으로 도망갔을 때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럴 때 타자는 큰 기침이라도 한번 할 듯 여유를 부리며 방망이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1루를 향해 뛰어가야 하는데~.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몸이 불편해 뛰질 못하니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호장구를 푼다. 그때 갑옷을 벗는 것 같다. 요즘의 보호장구는 거짓말 좀 보태 유니폼 수준이다. 팔꿈치에, 종아리와 발목에, 그러고 나서야 1루로 향한다. 그 약간의 지루함이 이어지는 동안 ‘아, 이전엔 야구를 어떻게 했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왠지.

‘천연 야구’를 돌려다오

-아니 그게 대순가. 그 선수 몸값이 얼만데. 그 비싼 몸을 보호하는 데야 보호장구면 어떻고 실제 갑옷인들 어때. 그리고 1루까지 몇 초 안에 뛰어가야 한다는 규정을 어겼나. 좀 천천히 가면 어때? 규칙을 어긴 것도 아닌데 뭘 그리 호들갑이야.

지난 7일 광주구장. SK-KIA의 경기에서 박정권이 때린 타구는 새까맣게 떠올라 오른쪽 담장을 넘어 갔다. 그 홈런 판정을 놓고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이 그어졌다. 그 홈런은 역사상 처음으로 비디오 판독에 의해 가려졌다. 1루심이 홈런이라고 판정했으나 KIA 조범현 감독이 이의를 제기했고 올해부터 도입된 홈런 타구 비디오 판정의 규칙에 의해 재생 화면을 보고 정확한 판정을 내렸다. 그런데 그때, ‘인사이드’의 비딱한 시선은 이랬다. ‘사람이 하는 야구가 이제 빅 브러더의 지배를 받는 건가’라는. 뭔가 천연 조미료가 아닌 인공 조미료가 맛을 내는 음식을 받아 든. 그런 느낌 말이다.

-아니 그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인가. 정확한 판정을 내리는 게 양팀 모두를 위해 바람직하고 공평한 거지. 그런 정확한 판정을 위해서라면 비디오 판독이 아니라 전자감응장치를 통한 스트라이크/볼 판정도 내릴 판인데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말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 시절 “무더운 지역 날씨 탓에 쾌적한 돔 구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부 의견에 대해 “더위와 싸우는 것도 게임의 일부분”이라고 받아쳤다. 그래서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구장 레인저스 볼파크는 아직도 야외구장에 천연잔디를 고수하고 있다. 그게 게임의, 야구의 일부분이요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고지식한 전 구단주 덕분이다.

베이징 올림픽에 승부치기가 도입됐을 때는 어땠나. 그래서 중국과의 예선전 연장전 때 주자를 1, 2루에 놓고 공격이 시작됐을 때, 이건 뭔가 야구를 하는 건지 아님 체스를 두는 건지, 개운찮은 고기 찌꺼기가 이빨 사이에 남아 있는 기분이 들지 않았었나.

현장에 계신 감독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잘했다”고 하는 끝장 승부 폐지도 비슷한 느낌이다. 연장 12회까지 4시간을 넘게 싸우고 ‘무승부’라는 성적표를 받아든다는 게 그렇다. ‘이기기 위해 한다’는 게임의 기본 취지 자체가 ‘지지 않으려고 한다’로 바뀐 건데, 뭐 그러면 좀 어떠냐는 거다.

야구는 사람이 하고, 공이 아닌 사람이 홈을 밟아야 득점을 올리는 경기다. 그 사람 냄새가 살아 있는 게 야구의 매력이다. 그 자연스러운 매력에 자꾸 손을 대 시대에 맞게, 환경에 맞게 바꿔 가는 게 과연 옳은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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