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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세상보기]아이 앰 에프(I am F)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IMF) 총재가 방한한다니까 어떤 언론사에서 인터뷰 취재를 위해 기자를 내보냈다.

마침 이 기자는 영어를 잘못해서 사전에 질문 요령을 가르쳐 주어야 했다.

캉드쉬 총재를 만나면 먼저 "하우 아 유?" 하고 인사하라. 그러면 그는 대뜸 "저는 한국 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영어로 따발총처럼 쏘아붙일 것이다.

그때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 앰 아이 (So am I)" 하라. 나도 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사람이라고 공감을 표시해야 인터뷰가 잘 진행될 테니까. 그런데 당황한 기자는 캉드쉬를 만나자마자 "후 아 유?

(Who are you?

)" 해버렸다.

기자보다 더 당황한 것은 캉드쉬였다.

한국 경제의 사활을 좌우할 나를 몰라보다니!

그러고는 옳거니, 이 기자가 유머를 구사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도 유머로 응대하려고 "아이 엠 에프 (IMF)!" 했다.

자신이 IMF에서 나온 사람임을 암시한 말이다.

그러자 이 기자는 가르침을 받은대로 "소 앰 아이" 했다.

"나도 아이 앰 에프입니다" 라는 말은 I am F, 즉 "나는 F학점을 받았습니다" 라는 콩글리시의 관용어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이 앰 커피 하는 식) .

요즘의 최대 유행어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습니까?" 라는 의문문이다.

이 질문은 우리가 얼떨결에 3류국가로 전락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 원인은 명백하다.

외채가 늘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커지고, 총체적으로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분석은 신문에 다 난 것이지만 다음과 같은 비보도 심층분석도 있다.

"한국 경제대학은 경제분야에선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대학이다.

이 대학이 연구.개발한 '한강 기적론' 은 명성이 자자하다.

그런데 최근 몇년 사이 이 대학에는 부총리급 F학점 이수자들이 다수 생겨 문제가 커졌다.

그 명단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93년 2월 학번 이경식 (李經植) 부총리. 그는 쌀 시장은 절대 개방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허언에 휘말려 낙제했다.

낙제를 강요당했을 때 이를 거부하지 못한 그는 '배짱론' 에서 F학점을 받았다.

다음 93년 12월 학번 정재석 (丁渽錫) 부총리. 그는 물가를 잡겠다고 과로한 나머지 낙제했다.

그는 '보건학' 에서 F학점을 받았다, 94년 10월 학번 홍재형 (洪在馨) 부총리. 그는 충청권의 영주에 도전한다고 정치판에 뛰어들다가 낙제했다.

그는 '판단론' 에서 F학점을 받았다.

95년 12월 학번 나웅배 (羅雄培) 부총리. 그는 고비용 구조를 혁파한다고 하다가 고금리의 도전을 받고 낙제했다.

그는 '금리론' 에서 F학점을 받았다.

96년 8월 학번 한승수 (韓昇洙) 부총리. 그는 한보사태의 격랑 속에 떠밀려 낙제했다.

그는 '제철학' 에서 F학점을 받았다.

97년 3월 학번 강경식 (姜慶植) 부총리. 그는 시장경제의 신봉자이면서도 외환위기때 시장기능을 작동시키지 못하고 낙제했다.

그는 '시장경제론' 에서 F학점을 받았다.

그런데 6명의 낙제생 전부가 공통으로 F학점을 받은 과목은 '외채 망국론' 이었다.

그들이 미리 외채공부를 좀더 열심히 했던들 오늘의 망신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 이런 분석이 끝나자마자 6명의 낙제생들이 입을 모아 항의한다.

"열달이 멀다 하고 사람을 갈아 치우는데 공부할 틈이 어디 있는가.

위기의 원인은 '인사만사론 (人事萬事論)' 에서 F학점을 받은 사람한테 있는 것 아닌가. "

김성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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