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종의 CEO 노트] 뻣뻣한 주총 vs 잔치판 주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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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매년 5월 미국 중부 네브래스카주의 소도시 오마하는 ‘축제의 장’으로 변한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주총장은 지구촌 주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흥겨운 잔치 마당이다. 사흘 동안 2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린다. 주총 당일 버핏은 하루 종일 일반 주주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한다. 주주와 끈끈한 파트너십을 형성하려는 노력이다.

매년 3월은 한국의 주총 시즌이다. 주총 시한에 쫓겨 지난달 마지막 이틀에만 무려 200개 넘는 상장사가 주총을 열었다. 여러 회사에 투자한 사람이라도 한군데밖에 갈 수 없다. 일반 소액 주주들은 주총에 나오지 말라는 소리와 다름없다.

주총장 분위기도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천편일률, 일사천리다. 단상의 의장은 미리 준비한 안건을 열거한 뒤 “이의 없습니까”라고 질문하면, 자리에 있던 어떤 주주가 일어나 “동의합니다”를 외친다. 짜놓은 시나리오 같다. 실제로 많은 회사는 ‘원활한’ 주총 진행을 위해 직원이나 경영진과 친한 주주를 주총장 곳곳에 앉혀 둔다. 이들은 경영진에게 난처할 만한 질문이 나오는 걸 ‘원천봉쇄’하는 등 장내 분위기를 주도한다. 이 때문에 매출 수조원 이상의 큰 회사 주총도 20∼30분 만에 끝나 버리곤 한다. 1년 살림살이를 주주에게 보고하는 자리가 너무 형식적이고 초라해 보인다.

내가 경험한 미국 기업의 주총 분위기는 이런 모습과 차이가 있다. 회사를 믿고 투자해 준 주주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자리이자 회사 발전을 위한 진지한 토론장이다. 내가 설립해 운영한 자일랜은 나스닥에 상장했다. 주총은 로스앤젤레스 시내 호텔에서 열었다. 200여 명의 주주가 찾아와 경영진과 함께 식사하며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주주들은 회사의 세세한 경영 현황과 발전 계획에 대해 서너 시간 질문을 쏟아내고 경영진은 성심성의껏 답했다.

주주를 무시하는 풍토에서는 좋은 회사, 책임 있는 경영진이 나올 수 없다. 한때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벤처 투자 열풍이 사그라진 데에도 주주 무시 풍토가 작용했다고 본다.

한국에서도 주주 가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토론식 주총이 일부 기업에서 시도되는 등 변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총장에서는 회사의 주인이 주주가 아니라 경영진이라는 의식이 엿보인다. 일반 주주들까지 제대로 대접받는, 축제 같은 주총 모습을 보고 싶다. 꿈·희망·미래재단

김윤종 이사장 겸 SYK글로벌 대표 (www.dreamhopefutur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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