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극장 '용띠위에 개띠' 짧은 대화속 삶의 의미 되새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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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견숙 (犬淑) :니 딴 여자 생겼나? 있으면 이실직고 해라.

용두 (龍頭) :남자는 있어도 없다카는 기라. 내 니 속을 모를 줄 아나.

58년 개띠 견숙과 52년 용띠 용두가 나누는 대화 한토막. 결혼한 지 10년쯤, 애정이 식을 대로 식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며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 삭막한 '대립' 이 결국 사랑의 꽃을 잘라 버리고 결별로 치닫게 한다.

반성 그리고 재회. 드라마는 주마등처럼 이같은 일련의 사랑놀이를 스피디하게 관객속으로 전달한다.

하지만 그 맛은 새콤 달콤하다.

폐막후 한쌍의 부부가 극장을 나서는 순간, 아마도 이들은 '권태기 끝!' 을 외칠 것이다.

현재 대학로극장에서 공연중인 연극 '용띠위에 개띠' (이만희 작.연출) 는 이처럼 30.40대 한쌍의 부부가 권태기의 터널을 슬기롭게 극복해 가는 '성장드라마' 다.

비록 어른들의 이야기지만 그 동화적 모티브는 한창 커가는 어린애의 그것처럼 짜릿한 통증이 있다.

'짧은 결별' 뒤에 찾아오는 '긴 행복' 의 포만감. 그게 어쩌면 인생이 아닐까, 라며 둘은 묻고 대답한다.

연극은 첫 만남 - 신혼여행 - 출산 - 7년후 - 결별과 재결합 - 혈투와 묘합 (妙合) 등 6개 장면으로 구성됐다.

각각의 독립장면들이 영화처럼 빠른 템포로 지나간다.

이때 극장이란 '닫힌 공간' 의 평면화면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작.연출자 이만희의 시.촉각적인 언어다.

경상도 사투리 구어체로 한문장이 결코 20자를 넘지 않은 단문. 둘이 주고 받는 대화는 탁구놀이처럼 리듬감이 있다.

무대는 아무런 치장도 없지만 그 '빈 공간' 에서 관객은 자신의 거실 혹은 안방을 그리며, 어느새 배우자리에 자신을 채워 넣는다.

연극에 대한 관객의 반응도 좋다.

지난 8월29일 막이 올라 장기공연중인데도 회당 70~80여명의 관객들이 꾸준히 소극장을 찾고 있다.

30.40대 주부관객이 대부분. 그래서 대학로극장은 그들의 발길이 뜸할 때까지 '무기한' 으로 일정을 잡아놓고 손님을 맞고 있다.

2인극의 단조로움은 개성파 배우들의 교체출연으로 극복됐다.

대학로극장의 장기흥행작이었던 '불 좀 꺼주세요' 의 스타 이도경.최정우가 용두 역을, 탤런트 권재희과 김미경.강지은 여성트리오가 견숙 역을 맡아 '때에 따라' 뒤섞여 출연한다.

평일 오후4시30분.7시30분, 토.일.공휴일 오후4시.7시. 02 - 764 - 6052.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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