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사고’ 친 북한 … 미국에 큰 틀의 협상 요구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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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북한은 인공위성 발사에는 실패하고 장거리 로켓 발사에는 성공했다. 4월 5일 발사된 로켓 대포동 2호는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려놓지는 못했지만 태평양 쪽으로 3000㎞ 이상을 날아갔다. 이대로 가면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보유는 시간 문제다. 핵을 가진 북한이 장거리 운반수단까지 가지면 군사적으로는 가공할 위협이요, 정치적으로는 북한의 훨씬 강화된 협상력을 의미한다. 인공위성 발사에 실패했다고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처지가 아니다.

북한의 로켓 발사는 동북아 정치 지각판에 충격을 주어 반지역적이고, 평화를 갈망하는 국제사회의 경고를 묵살하여 반평화적이고, 전 세계가 금융 경제위기 해결에 지혜를 모으고 있을 때 강행한 것이라 반시대적이고, 기아선상의 수백만 북한 인민을 외면하고 4000억원 이상 들인 시험이어서 반인민적이다. 북한은 위성 발사라고 주장하지만 누가 봐도 그것은 통신위성이라는 양머리(羊頭)를 내건 장거리 로켓이라는 개고기(狗肉)다. 북한은 강도 높은 세계 여론의 뭇매를 맞아 마땅하다.

그러나 아무리 거칠게 북한을 규탄해도 로켓 발사가 초래할 다음과 같은 변화는 움직일 수 없다. 장거리 탄도미사일 능력을 과시한 북한은 미국에 높은 수준, 큰 틀의 핵·미사일 협상을 요구할 것이다. 미사일 모라토리엄(동결)의 대가로 연간 10억 달러 이상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6자회담이 재개되면 북한은 판을 유도하려 할 것이다. 핵 불능화 단계 진입 직전에 사실상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은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시간을 끌 것이다. 거기다 추가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의 문호는 열려 있는 채로다. 대북 협상에서 4월 5일 이전과 이후의 북한은 같지가 않다.

이제 문제의 중심은 어떤 사후 대책이 가능한가다. 6자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핵·미사일 수출과 확산을 방지하는 엔드게임(End-game)이 무엇인가다. 이미 상상력이 허용하는 모든 방안이 나왔다. 유엔 안보리 제재와 한국의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참여가 대표적인 대응이다. 그러나 유엔 제재는 비난 결의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중국과 러시아가 인공위성을 발사했다고 북한을 제재하는 것은 형평성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형평성’은 위성을 발사하는 나라가 많은데 북한만 제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형식 논리로는 그럴듯하지만 북한이 강행한 것은 사실상 장거리 미사일 테스트라는 분명한 사실을 외면하는 주장이다. 그래도 현실 논리로 넘을 수 없는 것이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의 벽이다.

한국의 PSI 참가도 해결책이 못 된다. 그것은 주민들이 구성한 방범대가 사고 차량의 번호를 적어 경찰에 신고하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내 집에 불이 옮겨 붙으려는데 이웃집들의 방화벽 쌓는 일에 도우러 달려가는 것과도 같다. 정부가 말하는 대로 북한 선박이 핵·미사일 관련 하물을 싣고 가는 것을 발견해도 공해상에서는 속수무책이라면 PSI 참가의 의의를 납득할 수 없다. 문호만 열어두고 실행은 슬그머니 미루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로켓 이후’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국 6자회담 재개와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북특사를 파견할 용의를 밝힌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민·관의 모든 채널을 뒤져 북한과 물밑 접촉의 루트를 개척해 특사 파견을 협상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그걸로는 부족하다. 6·15 선언과 10·4 합의 이행을 논의할 의향이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북한과의 논의 과정에서 버릴 것과 살릴 것, 수정할 것과 보완할 것, 천천히 할 것과 서둘러 할 것을 가리면 된다. 북한의 나쁜 행위에 보상을 하자는 것이냐는 반발이 예상되지만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때 일어날 사태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대화 단절의 장기화가 가장 위험하다.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1월 중순 현상 타파를 위해 북한이 큰 사고 한번 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한은 그의 기대에 보답했다. 북한이 사고를 쳐서 공이 우리에게로 넘어왔다. 한국은 대북 정책을 실용적으로 업데이트하고, 미국은 대북 정책을 제시할 기회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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