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보고 세로읽기]위선의 거품을 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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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언젠가 나는 사람이 개처럼 보여서 한동안 힘들었다.

물론 나의 모습도 표독스런 불도그의 형상으로 거울 앞에서 컹컹 짖곤 했다.

지하철을 타도, 길을 가도, 백화점에 가도 개의 모습을 한 사람들로 가득찼다.

땅투기하는 이들, 외제라면 사족을 못쓰는 이들, 쓰레기를 아무 데고 몰래 버리는 사람등, 그야말로 개였다.

놀러온 친구도 귀여운 개새끼로 보여 따뜻한 커피 대신 개먹이를 함께 끓여 먹고 싶었다.

개같은, 개새끼 등의 비유는 거의 욕이다.

윌리엄 웨그먼 (1942년 미국 태생) 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만 레이 시리즈' 에서 개의 비유는 무엇일까? 그의 애견 만 레이를 여러 모습으로 분장시켜 카메라 앞에 세운다.

초현실주의 미술가 겸 사진가인 만 레이를 여기서는 개로 등장시킨 것이다.

'가루 투성이' 는 검둥이 만 레이에게 밀가루를 뿌려 흰둥이로 만든다.

만 레이와 패션모델을 함께 찍은 사진은 상업사진의 패러디다.

대중문화의 친밀감과 현대 고급예술과의 미묘한 차이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의 사진은 빛나는 위트와 기지에 넘쳐 관객의 가슴을 자유롭게 휘젓는다.

변장한 만 레이 모습 뒤에 자신을 숨겨 삶의 심각함이나 전위예술의 진지함을 뒤엎는다.

계란 부침을 뒤집듯이 가뿐하게 말이다.

웨그먼은 70년대부터 비디오 작가로 각광을 받았으나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을 표현하기 위해 사진으로 옮겼다.

그는 이 매력적인 사진들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

어떤 사람은 애견 만 레이를 위대한 배우이자 감독인 찰리 채플린에 비유하기도 했다.

웨그먼은 만 레이를 통해 웃음속에 깃들인 비애감을 연출했다.

만 레이는 훌륭한 연기력을 발휘하다가 82년 장렬한 (?) 죽음을 맞고 말았다.

의인화한 만 레이를 통해 개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모습과 행위는 얼마나 스테레오타이프로 이루어졌는가 살필 수 있다.

짐짓 애쓰는 권위와 위엄으로 찌든 인간의 모습, 그 허식을 뒤엎는 유머스런 반전을 보여준다.

우리는 끈에 묶인 개처럼 살다 가는 것은 아닐까. '주체성없는 문화는 정복당한다.

' 자기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만큼이나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와 상품을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추운 불황을 이기고 세계의 문화전쟁에서 살아남는 일일 것이다.

이를 위해 겉과 속이 다른 우리 사회의 병폐와 위선의 거품을 빼야 한다.

외제상품 선호풍토, 획일화한 교육풍토도 고쳐야 하고…도처에 수선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어떤 신부님의 글이 생각난다.

'사물을 아는 것은/박식하게 되는 것이다/다른 사람들을 아는 것은/지혜롭게 되는 것이다/자신을 아는 것은/깨치는 것이다/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찾아내어라. ' 그렇다.

뭐든 원인을 알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신현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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