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대통령 부인의 자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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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선이 25일 앞으로 다가왔다.

장삼이사 (張三李四) 들은 모이기만 하면 어느 후보가 21세기를 준비하고 경제난국과 지역감정, 정치권 개혁과 행정개혁 등 산적한 난제들을 풀어나가는데 적합한지 논쟁을 벌인다.

후보 못지 않게 관심을 끄는 것은 후보 부인들에 대한 평가다.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 조사에서는 여성 유권자의 90%가 "후보 부인을 보고 대통령감을 선택하겠다" 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후보 부인에 대한 평가기준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각 후보 부인들에 대해 "한복 맵시가 때깔난다" "박정희 (朴正熙) 전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陸英修) 여사를 닮았다" "너무 나서는 유형이어서 싫다" 거나 "적극적으로 보여서 좋다" 는등 유권자 개인차원에서 감정적.주관적으로 평가할 뿐이다.

세련미나 용모, 자녀교육과 내조, 옷맵시와 학벌과 같은 막연한 이미지가 후보 부인을 평가하는 중요 잣대가 되는 것이다.

누가 사회활동을 잘 해낼 수 있고,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뒷전이다.

취재현장에서 만난 30대의 한 주부는 "여성들조차 옷맵시나 머리모양 등 외양만 보고 누가 좋다는 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여성들 스스로 지위 격상을 포기하는 것" 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누가 잘할 것이냐가 아니라 또 다른 '남성에 종속된 여성상' 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문제" 라고 비판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상당수 국민들이 '대통령의 그림자속에 숨어 아무 잡음 없이 지내는 조용한 내조자' 를 이상적인 대통령 부인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는 식의 기준으론 21세기를 맞는 적합한 대통령 부인을 선택할 수 없다.

국민들의 이런 정서를 반영이라도 하듯 후보 부인들은 머리모양을 陸여사 스타일로 바꾸거나 '조용한 내조자' 의 이미지를 조성하려는 해프닝을 벌이고 있다.

대통령 부인의 역할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대통령을 보필하는 단순한 내조자의 역할을 넘어선다.

대통령 부인은 남편 재임기간중 여성계는 물론 막후에서 정책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능력과 자질에 따라선 훌륭한 외교관의 역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우리 헌정사에도 있었다.

물론 부정적 영향이 더 컸던 것으로 평가되지만 말이다.

그래서 후보에 대한 검증만이 아니라 후보 부인의 자질도 검증할 필요가 있는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정민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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