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직원에게 준 보너스, 왜 비판이 일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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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고통 분담에 나서기는커녕 제 몫 챙기기에 급급한 모습에 미국인의 분노가 폭발하자 의회는 보너스에 90%의 세금을 부과해 회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부에선 AIG 사건이 모럴해저드와는 관련이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모럴해저드의 의미를 공부한다.

AIG의 임직원을 규탄하는 시위대 사이에서 한 남자가 “CEO의 착취를 막기 위한 노동자의 목소리”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중앙포토]


◆모럴해저드란=서울대 최혁(경영학) 교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모든 책임을 스스로 부담해야 할 때는 하지 않을 행동을 누군가 대신 책임을 져줄 때 서슴없이 하는 현상”이라고 모럴해저드를 정의했다.

건물의 소유주가 전기나 가스를 사용할 때 조심하는 이유는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손실을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보험에 가입해 화재에 따른 손해를 보험회사가 감당한다면 건물 소유주가 이전보다 화재 예방을 위한 노력에 소홀해지는데 모럴해저드의 전형적인 예다. 기업뿐 아니라 개인이나 사회·국가 등 각 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동을 지속하다 보면 모럴해저드에 빠지기 쉽다.

최 교수는 “AIG 사건은 단순히 모럴해저드라 부르기 모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AIG에 투입된 구제금융 가운데 500억 달러가 채무를 갚는 데 사용됐기 때문이다.

또 모럴해저드 비난의 직격탄이 됐던 직원들의 보너스에 대해 회사 측은 우수 인재를 붙잡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설명한다. AIG가 회생하려면 인재들이 떠나는 것을 막아야 했다는 주장이다.

◆신뢰 상실로 사회 분위기 침체=단국대 김태기(경제학) 교수는 “모럴해저드는 피해자와 피해 규모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업이나 국가의 무책임한 행위가 불특정 다수에게 미치는 피해 정도를 산출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모럴해저드가 만연하면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구성원 간 갈등과 불안이 조성돼 사회 분위기가 침체된다.

김 교수는 “강제적인 규제만으로 모럴해저드를 뿌리뽑을 수 없다”고 말한다. 결과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다고 해서 모럴해저드의 동기 유발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내적으로는 공무원 윤리나 기업 윤리, 직업 윤리 등 각 주체가 지켜야 할 사회적 약속을 준수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높이고 외적으론 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등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략적인 윤리경영=보너스를 지급해 비난을 받기 전까지 AIG는 미국인의 존경과 신뢰를 받던 ‘국민 기업’이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건실한 이미지가 무너짐으로써 AIG가 받은 타격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김태기 교수는 “윤리경영은 기업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전략적이고 필수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국민 의식이 높아질수록 정직이나 사회 정의와 같은 윤리적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경제적 성과로도 직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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