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손에 잡히는 중산층 복원 대책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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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중산층은 사회 안정의 중심축이다. 그러나 그 중산층이 고용과 소득의 불안정, 교육비와 의료비 등 가계 지출 부담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이 수립되지 않으면 중산층 붕괴의 가속화는 물론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적극적인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경제위기 극복을 더디게 한다. 현 경제위기의 본질은 공급에 비해 수요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소비와 투자의 중심인 중산층이 살아나야 이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이른바 휴먼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그 골자는 중산층의 탈락을 방지하고, 미래의 중산층 육성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는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와 교육의 자유를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티아 센 교수의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진정한 경제 회복은 기업과 가계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우선 국가가 취약 계층과 중산층을 지지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비와 의료비 등 가계의 부담을 덜어 주고 아동청소년의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휴먼뉴딜은 사회간접자본 중심의 녹색뉴딜사업과 함께 경제위기 타개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정부 대책이 지나치게 물적 자본 확충에 기울었다는 비판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도 기대된다. 그런데 국민들의 반응이 왠지 신통치 않아 보인다. 이는 휴먼뉴딜이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을 선보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 정책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세부적으로 실행 가능한 계획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국민의 손에 잡히는 대책을 곧바로 내놓지 않으면 사후 약방문이 될 우려가 있다.

정책의 구체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종합성이다. 범정부적인 종합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사업의 중복과 예산 누수, 대책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 대책 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제도의 시행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국가 재원은 한정돼 있고 쓸 곳은 많다. 이 때문에 재원 배분은 항상 고도의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 휴먼뉴딜이 위기 극복에 꼭 필요하다면 재원 배분에서도 특단의 배려가 필요하다. 배고픈 이에게 물고기를 직접 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초기에는 물고기도 줘야 하고 교육훈련비도 따로 대줘야 한다. 그냥 물고기만 주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들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강한 나라를 만드는 데 경제력보다 중요한 것이 사회통합력이다. 최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우리 대표팀의 선전을 통해 얻은 것은 뛰어난 야구 성적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하나됨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사회 통합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사회 통합은 운동경기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국민이 하나돼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기 상황에서도 온 국민이 하나됨을 믿을 수 있도록 견고한 사회보장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위기가 끝나면 누구에게나 밝은 미래가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모든 국민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고 위기 극복에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