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상무자리 박차고 회사차린 이은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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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여기 34세의 한 여자가 있다. 이은정. 잘 모를 거다. 하지만 한라그룹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4년10개월만에 상무 직함을 단 사람이라고 소개하면?다들 ‘아,그 여자’할 것이다.

소위 한라의 ‘로열 패밀리’가 아닌 사람으로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91년 한라그룹 비서실에 입사. 94년 국내 대기업 최연소 임원(이사). 96년 상무. 세인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언론도 가세했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에 선 그녀의 모습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을 뿐,과거의 고통스런 세월을 함께 읽으려 들지 않았다.

답답하고 때론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비망록을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은 ‘30대 신화는 늦지 않다(문예당)’는 책으로 묶여졌다. “20대, 난 실패자였다. 미국에서 의사가 되고자 했다. 능력에 닿지 않아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아웅산 사태로 아버지(이기욱 당시 재무차관)가 돌아가셨다. 미국에서의 직장·결혼생활은 실패작이었다. 모든 게 버겁고 고달팠다. 네살배기 아들 하나를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왔다. 생의 실패자, 인생항해의 조난자가 바로 나였다. ”

과거사를 숨김없이 털어 놓았다. 솔직해서 좋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솔직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녀의 말. “어느 누가 자신의 아픈 상처를 밝히고 싶겠어요. 그러나 그런 이야기까지 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제가 혼자 힘으로 역경을 딛고 그 자리에 이른 사실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로 절박했거든요.”

사회에서 여자가 겪는 일,아니 사람 사는 게 결국 다 ‘거기서 거기’다. 이은정씨 역시 자신만 역경의 삶을 살아왔다고 여기진 않는다. 그러나 30대. 그녀는 다른 톤의 얘기를 하고 싶었다. “여직원 유니폼을 입고 한라그룹에서 일을 시작했다. 복사부터 시작해 상무까지. 아이딸린 이혼녀가. 정말이지 정신없이 뛰었다. 남들은 날더러 ‘오늘만 살고 말 사람 같다’고 했다. 나는 전장의 전사, 바로 그것이었다.”

정말 신화라고 해야하는지. 무언가가 찾아 왔다. 비망록에 이렇게 썼다. “그건 선택의 산물이었다. 평야와 아스팔트 대신에 자갈밭과 골짜기를 골랐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말고 내일은 없다는 생각.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다. 오늘은 항상 인생의 축소판이고 내일은 허무하다. 그 오늘을 가장 치열하게 사는 게 성공비결 아닐까.”

그녀는 어느 날 문득 마음이 흔들렸다.

자유를 갖고 싶었고 생활의 거품을 뺄 필요성이 있었다.

뭔가 전환점을 찾다가 사표를 떠올렸다.

어머니와 주위사람들 모두 신중을 기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마음을 굳혔다.

사장까지 해볼 욕심 말고 복사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을 누가 알까. 신선함.새로움. 가슴이 먼저 뛰었다.

지난 7월말이었다.

'휴먼 인터페이스' 라는 이름의 회사. 곧바로 그녀는 인터넷 소프트웨어 업체 대표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런 말을 붙인다.

"제가 생각하는 성공의 개념은 좀 다릅니다.

조직원들이 내 회사라는 생각을 갖고 일하는 좋은 회사, 한마디로 '일할 맛 나는 회사' 를 만들고 싶습니다.

" 다시 화제선상에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데렐라' 라는 꼬리표를 떼내기 위하여 말이다.

자칭 '독하지는 않지만 강한 여자' 이은정. 그녀는 지금 21세기를 생각중이다.

문화사업을 떠올리고 있다.

문화적 명소의 절실함 같은 것. 하지만 현재로선 구체적인 얘기를 하기 역부족이다.

어차피 인생은 장거리 경주 아닌가.

개인사업가로서의 '그녀 40대' 가 문득 궁금해진다.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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